인권위, 조사결과 쉬쉬하다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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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용소에서 임신한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아기 코가 땅에 닿도록 엎어둔다. 아기가 울면서 버둥대면 엄마는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면 안전원이 와서 '다시는 중국에 가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북한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다 지난해 10월 입국한 A씨(여.55)가 폭로한 북한 내 탈북자 수용소의 참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동국대 북한학연구소에 의뢰해 제출받은 북한의 인권 탄압 실태에 관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보고서는 탈북자 5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하나원(탈북자 사회정착 지원기관)에서 교육받고 있는 탈북자 100명에 대한 설문조사 뒤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의 75%가 '공개 처형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17%는 '소문은 들었다'고 했다. "소를 훔쳐서 공개 처형을 당한 것을 봤다"는 증언도 있다.

강제 낙태에 대한 응답도 쏟아졌다. 강제 낙태를 목격한 경우가 21%, 직접 강제 낙태를 당한 경우도 3%였다. "시장에서 굶어 죽은 시체를 옆에 두고 떡 장사를 하더라"는 충격적인 전언도 있었다. '굶어 죽은 사람을 직접 봤다'고 답한 응답자는 탈북자의 64%에 이르렀다. 응답자의 62%는 북한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을 식량 문제로 꼽았다.

한편 인권위는 이 보고서를 지난달에 입수하고도 공개하지 않다가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내용이 알려지자 8일 뒤늦게 공개했다. 인권위 측은 "내부 참고 자료일 뿐 발표할 계획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위가 6자회담 등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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