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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35> 보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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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와 절인 배추를 함께 내는 고향집 보쌈. 배추는 그날그날 매일 새로 절인다.

올 겨울 김장은 다 마치셨나요. 김장하는 날이면 빠지지 않는 게 있죠. 바로 보쌈입니다.

덩어리째 삶은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 김치나 배추에 싸 먹으면 김장하며 쌓인 피로가 사라질 정도로 맛있는데요.

이번에 소개할 두 집 모두 30년 가까이 한 동네를 지킨 맛집입니다. 한 곳은 사태로 만든 보쌈을 절인 배추와 함께 먹고, 다른 곳은 삼겹살로 만든 보쌈을 보쌈김치에 싸 먹습니다.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다이어리알』이윤화 대표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맛집 파워블로거(비밀이야) 배동렬씨,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저자 이영승씨 추천을 받아 5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5곳을 10월 29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하고 11월 5일 강남통신 온라인(www.joongang.co.kr/gangnam)에 올려 각각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고향집과 은성보쌈이 각각 1,2위로 뽑혔습니다. 라이벌 <36> ‘간장게장’ 결과는 12월 3일 발표합니다.

보쌈김치는 잊어 주세요, 절인 배추가 있거든요

고향집은 포기 김치 대신 소금물에 2~3시간 절인 배추를 내놓는다. 김장 날 남은 배추에 고기 싸 먹는 것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이 동네 이름이 원래 학골마을이에요. 예전엔 낮은 동산이 많았는데 거기에 학이 많이 와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강남 개발 후 건설회관, 석유개발공사, 토지개발공사 등 큰 건물이 생겼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식당들이 생긴 거죠. 이 가게가 처음 문 연 게 1986년인데, 그때 이미 식당이 꽤 많았어요.”

 서울 논현동 고향집의 안덕수(56) 사장. 사실 그는 아내 오순환(50)씨와 함께 고향집에 식자재를 납품하던 슈퍼마켓 사장이었다. 고향집은 당시 40대 여사장인 민혜자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민 사장과 안 사장 부부는 다들 고향이 안성이라 쉽게 가까워졌고 그렇게 20년을 알고 지냈다. 그러다 95년 안사장 부부의 논현동 슈퍼마켓 건물이 헐리는 바람에 압구정 로데오거리로 가게를 옮기게 됐지만 여전히 민 사장 식당에 쌀과 채소 등 식자재를 납품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했다. 그러던 2005년 여름, 민 사장이 이들 부부에게 “고향집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안덕수 사장이 보쌈 고기를 썰고 있다.

 “동네마다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는 통에 다들 참 힘들던 때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였고요. 바로 그때 민 사장이 식당 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은 거죠. 예순 넘으니 식당일 하기 힘들다면서요. 고향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 단골도 많은 가게잖아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그날로 슈퍼마켓을 정리했다. 아내 오씨는 민 사장 밑에서 한 달간 요리를 배웠다. 단골들한테 “맛이 변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민 사장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했다. 손맛은 그런대로 익혔지만 처음 해보는 식당일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다. 특히 김치를 비롯해 반찬을 모두 다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들은 적당히 사다 팔라고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단다.

 “남이 만든 찬을 손님한테 내면서 우리 음식 맛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식구 먹듯이 정성껏 만들어 손님상에 내야 할 말이 있죠. 또 항상 똑같은 맛을 내려면 반찬 한 가지도 직접 만들어야해요.”

 부부의 이런 노력 덕에 주인이 바뀌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슈퍼마켓 하며 좋은 식자재 고르는 안목을 키운 것도 도움이 됐다. 얼마 안돼 식당일이 익숙해지자 부부는 새 메뉴를 내놨다. 황태탕과 황태미역국이다. 점심에 많이 오는 인근 직장인들이 먹을 점심 메뉴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삼겹살을 쓰는 다른 보쌈집과 달리 사태만 고집한다. 담백하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고향집 최고 인기 메뉴는 제육보쌈이다. 돼지고기 사태를 1시간 동안 삶아 썰어 낸다. 더 삶으면 고기가 쉽게 부셔지고, 덜 삶으면 고기가 제대로 익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 또 대부분의 보쌈집이 지방이 많은 삼겹살을 쓰지만 고향집은 사태만 고집한다. 안 사장은 “사태가 삼겹살보다 다루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왜 사태만 고집하는 걸까.

 “삼겹살은 삶아서 그냥 자르면 되지만 사태는 결대로 잘 잘라야 식감이 퍽퍽하지 않아요. 그런데 잘만 요리하면 삼겹살보다 더 고소하고 담백해요. 기름기가 없으니 건강에도 좋고요.”

 삼겹살로 만든 보쌈에 익숙한 사람들은 고향집 보쌈에 생소해하기도 했다. 전에는 가끔 삼겹살 보쌈 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집 사태 보쌈을 맛 본 후에는 다들 단골이 된단다. 30년 가까이 사태 보쌈만 팔다보니 요즘엔 삼겹살 보쌈 찾는 이도 거의 없다. 다른 보쌈집과 다른 건 이뿐만이 아니다. 고향집엔 보쌈용 포기김치가 없다. 당일 아침 2~3시간 절여 씻어낸 배추, 그리고 무채에 굴·고춧가루로 버무린 김치 속만 함께 낸다.

 “김장하는 날 보면 김치 담그고 남은 절인 배춧속에 보쌈을 넣고 함께 먹잖아요. 그런 느낌의 보쌈이에요. 다른 보쌈집이랑 차별화도 되니까 사람들이 계속 찾는 거예요.”

30년 전 인테리어 그대로다.

 오랜 역사만큼 단골도 많다. 신문과 TV에 즐겨찾는 단골맛집으로 고향집을 추천한 이들도 여럿 있다. 최광식 전 문화체육부 장관과 요리연구가 이혜정씨도 그런 사람들 중 일부다. 전 축구 국가대표 안정환씨와 탤런트 차인표씨도 단골이다.

 사실 많은 단골들이 이 집을 좋아하는 건 꼭 음식 맛 때문만이 아니다. 30년째 그대로라 가게 분위기가 옛스럽고 정겨운데, 바로 이점이 단골을 끄는 데 한몫 한다. 아내 오씨는 “인테리어가 30년 전 그대로지만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바로 이런 느낌이 가게 이름인 고향집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정감 어린 분위기 덕에 최근엔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김지수와 최화정이 식사한 집, ‘끝없는 사랑’에서 류수영이 부인과 같이 밥 먹던 집이 모두 고향집이다. 지난 16일에는 김아중 주연의 드라마 ‘펀치’를 촬영했다.

 안 사장 부부가 고향집을 맡은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올해가 가장 힘들었어요. 매년 가게세와 인건비, 식재료비가 오르잖아요. 그만큼 마진이 주는 거죠. 게다가 올해는 경기까지 바닥을 치면서 더욱 힘들었어요. 아마 식당하는 사람들 다들 힘들 거예요.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죠. 그래도 우리는 변함없이 가게를 지킬 거예요. 30년 동안 똑같은 맛으로 고객을 대접해왔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요즘은 아들이 가게에 나와 돕고 있어요. 대를 잇겠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든든합니다.”

매일 김치 담가요, 생굴·호두 넣으니까요

고기를 삶는 김태준 사장. 김 사장은 “미리 삶아두면 맛이 없기 때문에 힘들어도 자주 고기를 삶는다”고 말했다(왼쪽 사진). 삼겹살과 매일 담근 포기 김치를 함께 내놓는 삼겹보쌈. 좋은 재료가 맛의 비결이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1990년대 재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지금은 아파트숲을 이루고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혔다. 은성보쌈은 금호동이 달동네였던 1979년부터 지금까지 이 동네와 역사를 함께 했다.

 본래 가게는 금호사거리에서 금남시장 쪽에 있는 국민은행 옆에 있었다. 동네 토박이로 인근에서 햄버거와 맥주를 팔던 문승록(74)씨가 79년 보쌈집을 열었다. 문씨는 “같은 건물에 있는 다방·여관·이발소 이름이 모두 은성인 걸 보고 나도 보쌈집 이름을 그냥 은성보쌈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이름은 별 고민없이 지었지만 음식 맛 내는 데는 여간 공을 들인 게 아니다. 문씨와 아내는 당시 맛집으로 유명했던 청계천의 한 보쌈 전문점에서 요리법을 배웠다. 다행히 요리 솜씨 뛰어난 아내 덕에 비법을 제대로 전수받았다. 문씨는 “금호동 주민들 입맛이 까다로워 여간 맛있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며 “우리도 입소문 나기까지 처음 1년은 고생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은성보쌈은 금남시장 안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지만 주말에는 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다.

 사실 동네 주민 발길을 처음 끈 건 넉넉한 인심이었다. 고기를 아주 넉넉하게 줬다. 보쌈집이지만 보쌈이 아니라 술과 음료로 이익을 남겼다. 그렇게 20년 넘게 동네 명물로 자리잡았던 은성보쌈은 2005년 문 닫을 위기를 맞았다. 가게가 세 들어있던 건물이 재개발에 들어가 갈 곳을 잃은 거다. 게다가 문씨 부부는 당시 예순 중반의 나이라 가게를 계속 꾸리는 게 힘에 부치기도 했다. 가게를 물려받겠다는 사람은 많았다. 같이 일하던 종업원도 나섰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친 사람이 지금의 김태준(57) 사장이다.

 “동생(김태준 사장)과 나는 같은 동네 살고 같은 성당에 다녀요. 내가 동생 대부(세례 받고 입교하는 사람에게 장차 신앙생활 길잡이가 되어 줄 후견인)죠. 그래서 믿을 수 있었어요. 물려달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동생에게 줄 거라며 모두 거절했어요.”

 가게를 인수한 김 사장은 금남시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은성보쌈 문을 다시 열었다. 사실 요리라면 김 사장도 자신있었다. 이미 30여 년 동안 만두가게부터 고깃집, 횟집, 한정식집 등 여러 종류의 식당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2003년 차린 만두가게 장사가 잘 안돼 고전할 때다. 김 사장은 워낙 동네에서 잘 나가던 맛집을 인수한 터라 큰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인이 바뀌자 단골들은 “맛이 달라졌다”며 외면했다. 게다가 몇 달 안 돼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잇따라 발생하며 돼지고기값이 크게 오른 것이다. 배추파동까지 겹쳐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5000원까지 올랐다. 그렇게 2년을 고생했다.

 김 사장은 이 위기를 맛으로 극복했다. 식재료 값이 올랐다고 값싼 대체 재료를 쓰지 않고 계속 좋은 재료를 고수했다. 보쌈 주재료인 고기는 국내산 생고기, 그것도 껍질 없는 것만 들여왔다. 김 사장은 “흔히 고기 껍질이 있으면 더 맛있는 걸로 생각하는데 보쌈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껍질부터 딱딱하게 굳어 맛이 없다”고 말했다. 또 고기는 미리 삶지 않고 1시간 마다 삶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고기를 썰어낸다. 미리 삶거나 썰어두면 식감이 퍽퍽해지기 때문이다.

신선한 국내산 돼지고기만 사용하기 때문에 돼지고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좋은 고기를 쓰면 냄새가 나지 않아요. 고소하고 맛있죠. 더 남기려면 사실 수입산 냉동 돼지고기를 쓰면 되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맛이 없어요. 한국 사람이 국산 먹어야죠.”

 보쌈과 찰떡궁합인 김치 맛도 신경썼다. 김 사장은 문씨에게 전수받은대로 김치를 담근다. 다만 김치 속을 만들 때 전보다 설탕을 줄이는 대신 꿀을 넣는다. 김 사장은 “형님(문씨)이 할 땐 김치에 단맛이 강했는데 아무래도 요즘엔 다들 건강을 챙기니 대신 꿀을 넣었다”고 했다. 잣과 생굴을 넣던 문씨 레시피에 호두를 추가해 고소한 맛을 더하기도 했다. 김치 속은 1주일에 2번 김 사장이 직접 만든다. 생굴·오징어 등 생물을 넣기 때문에 오래 먹도록 많이 만들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속을 써서 매일 김치를 담근다.

 김 사장표 보쌈이 알려지면서 2년 만에 손님이 늘었다. 다만 손님은 바뀌었다. 예전엔 보쌈을 안주 삼아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김 사장이 맡은 후부터는 젊은 사람들이 보쌈 맛을 즐기려고 온다. 평일엔 약속이나 한듯 오후 5시면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해 30분이면 1·2층 자리가 다 찬다. 특히 금요일과 주말엔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강 건너 강남은 기본이고 멀리 부산에서까지 찾아온다.

 “강남에도 맛집 많은데 찾기 힘든 우리 가게까지 뭐하러 오겠어요. 맛있으니까 오는 거죠. 10명 중 8명은 가게를 나서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해요. 연예인도 많이 오죠. 그런데 제가 1년 내내 가게 지키느라 TV를 잘 안 봐서 사실 연예인이 와도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유명세 덕분에 분점 내자는 제의도 많이 받지만 김 사장은 늘 단호하게 거절한다. 첫째 이유는 힘들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를 지키며 가게 하나 건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체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료값에 가맹비까지 내면 정작 분점은 남는 게 없다는 게 이유다.

 “프랜차이즈가 되면 본점에도 돈을 일부 줘야 하잖아요. 그러면 정말 남는 게 없어요. 식재료값이 워낙 올라 보쌈 팔아 남는 돈은 정말 얼마 안 되거든요. 우리집은 다행히 이미 유명하고, 게다가 내 가게니까 다른 데 돈 나갈 데 없으니 버틸 수 있는 거죠.”

 은성보쌈이 날로 더 인기를 끌면서 김 사장만큼 기뻐하는 사람이 1대 사장 문씨다. 두 사람은 요즘도 형제처럼 서로를 챙긴다.

 “우리 동생이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내가 할 때보다 장사가 더 잘되는 거 같아요. 내가 25년 동안 일궈놓은 은성보쌈을 잘 이어가니,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찾아주세요.”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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