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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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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참석자> ▲신병현(무역협회 회장)
▲박상식(정박·아프리카학회 회장)
▲홍순영(외무부 아프리카 국장)
▲신병현 회장=우선 순방성과부터 얘기해봅시다. 무엇보다 한국이 아프리카를, 아프리카는 한국을 서로 잘 알고 이해하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홍순영 국장=한걸음 더 나아가 서로 잘 모르던 사이가 사실은 알고보니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고 한편이 될 수 있는 사이임을 깨닫게 된 점도 중요합니다.
▲신=한국과 아프리카가 우방이자 친구이며 같은 제3세계의 일원임을 새삼 인식하고 서로 확인하게 됐읍니다.
▲홍=반식민주의, 모든 인종차별의 철폐, 나미비아 독립 등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이며 빈곤퇴치나 국가건설의 명제가 한·아프리카간 공통의 과제라는 점을 서로 알고 동반자적 관계가 설정되었읍니다.
▲박상식 박사=건국이래 우리외교의 기조는 안보를 위한 동맹외교 강화였읍니다. 때문에 우리는 미·일과의 동맹외교에만 모든 신경을 써 서방세계의 작은 일원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지요. 상대적으로 제3세계권은 우리를 미·일의 한묶음으로만 보았고 우리는 본의 아니게도 이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식민주의·인종주의 반대, 신경제질서의 제창을 큰소리로 함으로써 우리는 서방진영의 일원이라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3세계의 핵심멤버로 인식받게 되었읍니다.
▲신=그런 계기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우리의 국력입니다. 국민들이 피와 땀을 흘린 댓가로 나라가 이만큼 커졌기 때문에 아프리카까지 눈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박=지금까지 북괴가 비동맹·제3세계권에서 큰소리를 쳐오는 동안 우리는 끌려가는 입장이었고 수세에만 몰려있었읍니다. 그러나 제3세계권은 이제 김일성의 북괴보다 한국을 훨씬 더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기 시작했읍니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아프리카가 북괴의 독무대이던 시대는 종장을 고했다고 봅니다,
▲홍=공동성명에서 밝힌 반식민, 인종차별 철폐, 남아프리카공화국 규탄, 중동에서의 PLO 입장지지 및 대이스라엘 경고 등은 우리가 벌써부터 밝혀온 입장이었읍니다만 아프리카에서는 오히려 인식이 잘 안돼 있었읍니다.
▲신=경제적 측면을 좀 얘기해 볼까요. 선진국들은 긴 식민통치를 통해 아프리카를 수탈했을 뿐 돕지 않았읍니다. 가봉에서 미국 굴지의 은행인 시티뱅크 지배인이 꼭 좀 만나달라고 간청을 해서 만났더니 미국인이 아니라 세네갈인이었읍니다. 이 사람 얘기가 『우리는 우리를 진정으로 도와줄 우방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같은 나라가 아프리카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하더군요.
케냐 같은 데서는 유통업계 등의 상권을 장악하고있는 인도인들에게 반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번 케냐에서 일부 공군사병들에 의한 불발쿠데타가 있었읍니다만 인도인들이 이 와중에서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읍니다. 그러나 한국인 교민들은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았지요.
아프리카국 대부분이 독립초기에는 사회주의체제를 지향했었읍니다만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느끼고 있읍니다. 아프리카는 현재 국가건설을 앞세운 정치·외교적 전환을 하고 있읍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아프리카진출은 타임리한 것이었읍니다.
▲홍=결론적으로 정상간의 진지하고도 격의없는 교환, 각료들간에 이루어진 협력가능분야에 대한 심도있는 토의, 지도급 경제인의 대거수행과 이들에 의한 구체적인 사업검토 등으로 이번 아프리카순방은 당초 예상보다도 더 큰 환영과 지지를 받았읍니다. 이러한 성과는 앞으로 방문 4개국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도 폭넓게 확산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박=잠비아·탄자니아·기니 같은 인근 미수교국들은 이번 정상교환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과연 무슨 목적에서 나이지리아나 케냐 같은 아프리카 강국들이 한국과의 교류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가를 이들은 깨닫게 됐을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도 그런 자각을 바탕으로 대한관계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신=이번 순방국들이 아프리카 안의 영·불어권의 대표적 강국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홍=우리의 대아프리카 외교목표는 크게 보아 △외교망 확장 △개도국간 경협확대로 나눌 수 있읍니다. 당연히 이번 순방을 계기로 미수교국에 대한 수교노력이 앞으로 강화될 것이고 개도국간의 남남협력이라는 실질협력을 통해 보다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신=구체적인 경협확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데 동감입니다. 나라에 따라 다르겠읍니다만 한가지 공통점은 대아프리카경협은 우선 중소기업의 협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식민통치국들이 기술인력을 양성하지 않아 자력으로 할수 있는 게 적은 것이 아프리카국 대부분의 실정입니다. 우리의 해방직후나 비슷한 상황이지요. 뭐든지 만들면 팔리게 되어있읍니다만 만들어낼 기술과 사람이 없어요.
▲박=경제진출과 관련, 문제가 있다면 아프리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쪽에 있다고도 볼 수 있읍니다. 레소토의 한 각료가 『한국의 양복기술이 좋다고 들었는데 기술자들이 이민오면 어떠냐』고 저한테 물은 일이 있는데 과연 레소토에 누가 좋다고 가겠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신=인식이 문제이지요. 국민들이 아프리카를 올바르게 인식하면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아프리카는 이제 잠에서 깨어났고 농산물이나 광산물 등 원료만 대주는 차원에서 벗어나 서서히 경제개발쪽에 눈을 뜨고 있읍니다. 여기에 우리의 중소기업들이 진출해서 제품을 만들고, 기술을 제공하는 외에 보수·관리를 해주는 인력진출 등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읍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전대통령과 샤가리 대통령 사이에 오간 조그마한 사담을 하나 소개하죠.
나이지리아의 샤가리 대통령이 『나이지리아에 세우고있는 초현대식호텔이나 빌딩이 현지인들의 관리능력이 없어 고민이니 한국에서 경영을 맡아줄 수 없느냐』고 했다는 겁니다.
▲박=우리 국민이나 기업인들이 1∼2년안에 한밑천 잡아서 귀국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아프리카진출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아프리카 진출은 반이민을 간다는 각오로 현지에 적응하고 뿌리를 박는 개척자정신이 필요합니다. 오랜 식민지배와 수탈의 역사를 경험한 아프리카국가들은 단물만을 빨아먹는 선진국의 진출을 경계한 나머지 합작투자 등에 제도적 억제정책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아프리카 진출이 규모가 작은 신식민주의적 진출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홍=자금력이 비교적 약한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분야진출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자금이 넉넉지 못한 중소기업으로서는 진출국의 행정력 미흡이나 파트너의 합작능력부족으로 문제가 생길 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신=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케냐의 경우 인도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분야는 뚫기 어렵지만 농업·어업분야 및 합작투자에 의한 각종 중소기업분야 진출은 적극적인 자세로 나가볼만 합니다. 또 세네갈 같은 곳은 국내시장은 협소하지만 자유무역지대를 활용한 제3의 시장, 가령 같은 화폐권인 가봉·차드·베닌·콩고와 프랑스 등을 대상으로 한 합작진출이 가능합니다.
진출에 따른 문제점으로는 △행정수준이 낮고 △중간관리층이 없으며 △기술자쿼터, 송금이익과 합작비율 제약 △자본부족 등이죠.
▲홍=기업투자는 따라서 서서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일시에 무드로만 밀어붙여서만도 안됩니다. 아프리카는 중동과는 다릅니다. 아프리카가 아직은 우리의 「포스트중동」이 되기에는 이른 감이 있읍니다.
▲신=정부가 정책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성급한 기대도 곤란합니다. 기업은 신중하고 확실하게 경제성을 검토해 결정해야되고 정부는 일단 내려진 결정을 확고하게 밀어줘야 합니다.
▲박=아프리카 진출에 따르는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이번 순방의 성과를 극대화해 나갈 수 있는 후속조치가 앞으로 이어져야할 것입니다.
▲신=앞으로의 한-아프리카 관계는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보다 기업인이 또는 개척자정신을 가진 기술인력이 얼마나 나가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유대관계가 만만해지고 영속화된다는 것은 서로의 도움이 크다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박=아울러서 우리국민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령 우리교과서도 아프리카의 참모습과 현실을 보다 깊이있게 이해시키는 쪽으로 더 신경을 써야합니다.
지금의 아프리카인들은 50년전의 한국농촌처럼 순박합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유대가 당연히 중시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 전대통령의 순방에서도 각국 원수와 만나는 회수가 늘어갈 때마다 친숙한 분위기와 우의가 점차 쌓여감을 느낄 수 있었읍니다. 이런 정의는 다분히 동양적인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서방정상과의 교환에서는 그런 분위기는 좀처럼 생기기 어려운 것이지요.
▲홍=가령 나이지리아의 경협이 성공할 경우 이웃한 토고나 베닌 같은 친공국가도 북한과 관계를 맺어보았자 손해라는 생각이 들것이고 이것에 착안해 우리 외교의 후속조치가 뒤따를 것입니다.
▲박=순방에 이은 두번째 단계로서 이디오피아·모리타니·가나와 같은 평소 소원한 지역에 총리나 각료급 특사를 방문시켜 무드를 확산시키는 외교노력이 후속조치로 이어져야 합니다.
▲신=우리의 모든 여건이 어려운 현실에서 아프리카에 눈을 돌린 것은 시대상황을 능동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결단에서였읍니다.
한-아간의 동질의식을 확대하고 경제적으로 서로 돕고 사는 바탕을 늘려나가는 노력이 계속되어야겠죠.
▲홍=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이번 순방이 우리 교민들에게 조국에 대한 긍지와 일체감을 심어주었다는 점입니다. <정리=유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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