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글쎄, 왕자님이랑 결혼 안 했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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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실 잣는 거미
케이트 페티 글, 메리 클레어 스미스 그림
최미경 옮김, 책그릇, 32쪽, 8800원

뻔하지 않다는 건 통쾌한 일이다. '실 잣는 거미'는 전형적인 옛날 이야기의 골격을 갖고 있지만, 그 결말은 뻔한 틀을 깨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런 얘기다. 천을 짜는 아름다운 소녀 애리언. 그를 마음씨 나쁜 여왕이 괴롭힌다. 성에 가둬놓고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여왕을 위한 옷감을 짜라고 명령했다. 곤경에 빠진 애리언을 도와준 수호천사는 거미들이다.

수백 마리의 거미가 나타나서 애리언 대신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비단을 짜줬고, 나쁜 왕비를 공격해 애리언이 달아날 수 있게 도와준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애리언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는 왕자를 만나게 됐다는 게 줄거리다. 얼핏 싱겁다. 나쁜 왕비와 동물들의 도움, 그리고 멋진 왕자 등의 설정은 '신데렐라''콩쥐팥쥐'류의 동화와 꼭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리언이 왕자와 결혼하지 않고 자주 만나기만 하는 데서 끝나는 게 이채롭다(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주인공들의 결혼으로 마무리짓지 않아 호평을 받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애리언은 지금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감 짜는 일을 하면서 동물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엔딩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으라'는 곧은 메시지를 전한다. 멋진 남자를 만나 초라한 여자아이가 신분상승을 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 구조에서 멋지게 탈출한 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대상연령이지만, 화려하고 고운 삽화가 유아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 한몫 할 듯 싶다.

'늑대는 양을 잡아먹었을까?' 역시 뻔한 설정에 색다른 결말로 재미와 감동을 준다. 교활한 늑대가 순진한 양을 잡아먹기 위해 잔꾀를 낸다. 양을 유인하는 데 성공한 늑대는 맛있는 양요리를 해먹을 만한 한적한 곳을 찾아나선다. 양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얼음낚시를 하던 늑대는 그만 물에 빠지고 마는데. 마음씨 나쁜 늑대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흐름은 여기까지다.

양은 물에 빠진 늑대를 구해내고 정성껏 간호하며 돌봐준다. 그렇다면 둘은 평생 좋은 친구로 지내게 될까? 그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린 늑대는 양에게 내일 아침 자신이 깨기 전에 집을 떠나라고 말한다. 아침에도 양을 안 잡아먹을 자신이 없어서다. 그런 사정도 모른 채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양. 끝까지 진정으로 늑대를 대하는 양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동화다. 초등학교 2학년 이상이면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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