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화분에 파묻힌 연주회·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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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모처럼의 시내 나들이 길에 시간의 여유도 있고 해서 말로만 듣던 그 근처의 화랑과 화랑이 속해 있는 건물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화랑은 과연 구조도 특이했고 퍽 아담했으나 입구에서부터 층계가 꺾어져 내려가 반 지하실에 자리한 비교적 좁은 공간이었고 어느 화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전시장은 좁은 입구며 층계며 심지어 화랑 밖에까지 꽃바구니로 뒤덮여 지나치도록 화려한 꽃동산을 이루었는데, 또 화환은 저마다 넓적한 원색의 리번을 문패처럼 늘어뜨려 「축 ○○○ 전시회, 모 기관 ×××증정」하고 보낸 이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었다.
나는 꽃다발 공세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며 조심스레 층계를 내려갔다. 그리고 전시된 그림들을 본 순간 부조화한 분위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왜냐하면 거기 전시된 그림들의 색조는 찬란한 꽃과는 거리가 먼, 조용하고 안으로 잦아드는 엷은 중간색으로 일관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꽃을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쫓기듯 화랑을 튀어 나왔다.
축하객은 한껏 축하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과연 이 화가는 친지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축하 받으며 피와 땀으로 빚어낸 작품을 원색의 꽃 속에 파묻고 싶었을까? 그 화가가 누군진 몰라도 퍽 난감했으리라. 나는 공연히 서글퍼졌다.
어느 음악회장에 들어섰다가 그 로비 한끝에서 한끝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꽃들에 압도된 적도 있었다.
꽃다발과 화분은 계속 몰려들고 있었고 일꾼은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몇몇 화환을 증정하는 이들은 자기네 이름이 펄럭이는 꽃을 더 좋은 자리에 놓으려고 이미 놓인 꽃을 밀지 않나, 구석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일꾼을 잡아끌지 않나, 이 작은 바구니는 치워도 되지 않느냐…, 옥신각신 언성까지 높여가며 희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깥쪽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막상 그 큰 연주회장 안은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그러면 그 꽃들은 누가 보내왔을까? 연주회가 끝나면 주렁주렁 문패가 달린 저 꽃들은 어디로 갈까? 실어가자면 트럭 한대도 모자랄거야.
분명 나는 음악을 들으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꽃으로 인한 엉뚱한 공상에 쫓기느라 푸근히 음악을 즐기지 못하고 말았다. 공연히 연주자가 측은해 보였다.
연주회를 끝낸 피아니스트는 그 꽃 속에 파묻혀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상대방의 경사를 축하하는데 우리는 이토록 상투적이고 자기 과시적이어야 할까? 꽃을 보내되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와 격려의 글이라도 몇 줄 곁들여 작은 카드를 꽃 틈에 끼워 보내는 겸허는 어떨까? 경우에 지나치지 않고 받는 사람이 고마움을 느낄 축하의 방법은 과시적인 꽃말고도 얼마든지 많으리라 믿는다.
이 또한 의식개선의 일익이 아니겠는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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