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③문화] 29. 종교 천국 ,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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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현재 종교를 가진 한국인은 57%로 비신자(43.0%)보다 훨씬 많다.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종교인구가 비종교인구를 역전한 것은 1998년. 하지만 한국을 ‘종교 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구촌 거대 종교인 개신교(21.6%)·천주교(8.2%)·불교(26.7%)의 신자수가 ‘황금의 트라이앵글’(윤이흠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표현)을 이루는 구도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거의 유례가 없는 이런 구도는 한국 사회가 ‘산업화 빅뱅’사이클에 진입한 65년 이후의 일. 이때 이후 종교별로 큰 지도자들이 출현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줬다. 허전한 마음도 거듭해 쓸어줬다.

지난 40년 한국인들 마음 속의 지도자 중 개신교의 경우 2000년 타계한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가 우선 꼽힌다. 1902년생으로 지난 20세기의 삶을 한국인과 꼬박 함께 해온 한 목사의 경우 ‘열린 보수주의’(강원용 목사의 말)의 신학만큼 기억되는 것이 청빈과 절제의 삶 그 자체였다. 특히 소천 직후 그가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저금통장 하나 없이 생활했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그가 남긴 ‘무언의 가르침’은 사회적 탐욕을 꾸짖는 웅변으로 되돌아왔다.

불교계의 큰 지도자로는 71년 열반한 조계종 2대 종정 청담 스님과 6, 7대 종정 성철 스님이 꼽힌다. 청담 스님이 해방 후 한국 불교의 정화 노력을 이끈 근엄한 선승으로 기억된다면, 성철 스님은 대중적 친화력도 갖췄다. 철두철미 산사람으로 살았던 성철 스님의 영향력은 ‘법어를 통한 울림’에 크게 힘입고 있다. 특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山是山 水是水)”는 선가의 오랜 법문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이 말은 부박한 시정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급속한 진행과 이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속에 있던 한국인들에게 삶의 진면목과, 가치의 참됨과 거짓 여부를 묻게 만들었던 것이다. 성철 스님은 수백 군데 기운 누더기 가사장삼 한 벌로 청빈과 절제의 삶을 가르쳤다는 점도 유명하다.

천주교는 지난 40년 가장 괄목할 만한 사회적 권위를 획득했던 종교. 이는 상당 대목 걸출한 스타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위엄에 찬 존재 때문이다. 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66년 주교 수품, 68년 대주교 승품에 이어 이듬해 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에 올랐다.

특히 서울대교구장을 맡아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내내 맞서고, 노동자·농민 등 약자들 편에 서온 사제로서의 역할 수행으로 김 추기경은 98년 서울대교구장 은퇴 이후에도 변함없는 지도자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 역사 고난의 갈피 때마다 그 분이 비껴서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행운을 느낀다”는 소설가 박완서씨의 말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종교 여부를 떠나서.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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