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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비타시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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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2년 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독일 정상회담 때 이야기. 양국 회담인데 3명의 정상이 자리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를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가 함께 맞았다. 대선 라이벌이었던 시라크와 조스팽 두 사람은 사사건건 으르렁댔고 손님으로 온 슈뢰더 총리가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싸움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이러한 풍경은 '한 나라 두 정상'이 맞서던 제3차 코아비타시옹(좌우동거 정부) 내내 연출됐다.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대표는 언제나 두 명이었다. 그것도 좌.우파로 이데올로기가 달랐다. 타국 정상들의 입장이 곤란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흔히 프랑스 정치체제를 대통령은 외교.국방을, 총리는 내무.재정을 맡아 권력을 분담하는 이원집정부제로 알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권력의 무게중심이 대통령 또는 총리 어느 한 쪽으로 쏠릴 뿐 권력이 분산되는 경우는 없다. 여대야소면 대통령에게, 여소야대면 총리에게로 권력이 이동한다.

조스팽은 외교.국방 권한을 시라크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절로 그렇게 된다. 외교.국방부 장관이 자기편 총리와 반대편 대통령 중 누구에게 먼저 보고하겠느냐 말이다. 대통령은 그저 '얼굴마담'이 될 뿐이다. 시라크 역시 자신이 총리였던 1차 코아비타시옹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철저히 '왕따'시켰다. 미테랑 대통령은 우파 총리.장관들로부터 받은 무시에 대한 화풀이로 전통적인 내각 기념 촬영을 거부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반대로 여대야소의 경우 총리가 얼굴마담이 된다.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이처럼 코아비타시옹은 권력의 상호견제 효과보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잦은 충돌로 국력을 낭비하는 역효과가 커 비판을 받아왔다. 프랑스가 7년이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줄인 것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같게 해 비효율적인 코아비타시옹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에도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 바 있다. 대연정 구상도 그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남들이 실패를 인정하고 버린 것에 미련을 접지 못하는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이훈범 주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