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다 소각했다더니 … " 국정원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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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은 검찰이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 집을 압수수색해 무려 274개의 도청 테이프를 확보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 시절의 일이지만 국정원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더기 X파일이 공개될 경우 우선은 테이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화 내용에 관심이 모이겠지만 그 폭발력이 크면 클수록 결국은 안기부의 불법 도청에 대한 비난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압수한 테이프 가운데 일부만 공개된다 해도 이 사회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 같다"면서 "모든 책임은 국정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벌써부터 일각에서 이참에 국정원 국내 파트를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국정원으로서는 매우 당혹스럽다"고 걱정했다.

국정원은 이번 수사에 애초부터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비난 여론에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국정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불법 도청 실태가 알려진 직후부터 조사에 착수, "한 점 의혹 없이 모든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왔으나 열흘 동안 별 소득이 없었다. 공씨가 자해를 하기 이전 간접 조사를 벌였던 국정원은 "테이프를 1999년 전량 수거해 소각했다"는 공씨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착수 하루 만에 테이프 전량을 손에 넣은 것이다.

국정원이 테이프 회수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국정원은 민간인에 대해선 직접적인 수사권이나 압수수색권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가정보원 직원법 위반 사안이라고 해도 퇴직 직원에 대해 강제로 집을 수사하거나 (테이프 등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또 "공씨를 조사하면서 테이프 복사본이 있으면 반납해 달라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조사 직전에 공씨가 자해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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