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야스쿠니 참배 올해는 8·15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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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8.15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종전 60주년 기념일을 맞아 주변국 눈치를 볼 것 없이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초 여러 선택지의 하나에 불과했던 8.15 참배는 최근 중의원 해산 정국과 맞물려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우정법안 부결되면 총리직 던지고 참배=8.15 참배는 2001년 자민당 총재에 도전한 고이즈미의 주요 공약이었다. 그는 총리 취임 후 4년간 매년 한 차례 야스쿠니에 참배했으나 날짜는 8월 15일을 피했다. 한국.중국과 최악의 외교 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공약을 절반만 지킨 셈이다. 고이즈미의 측근은 "올해야말로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공언했다.

그런 가운데 중의원 해산이 가장 큰 변수로 등장했다. 고이즈미는 우정공사 민영화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관련 법안은 중의원에선 간발의 차이로 통과됐지만 참의원 통과는 불투명하다. 고이즈미는 부결될 경우 "중의원 해산권을 발동하고 총선거를 실시해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묻겠다"는 입장이다.

고이즈미가 중의원을 해산할 경우엔 8.15 참배 가능성이 매우 크다. 총리직을 내던진 이상 거리낌없이 소신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주변국 눈치를 보지 않고 참배하는 모습을 보여줄 경우엔 자민당 득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란 속셈도 작용한다. 현재 판세로는 법안 부결 가능성이 우세하다.

◆ 우익단체는 분위기 다지기=반면 법안이 가결될 경우엔 총리 임기가 내년 9월까지 보장되는 만큼 외교마찰을 의식해 택일(擇日)에 신중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 안보리 확대 등 유엔 개혁을 논의하는 유엔 정상회담(9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11월), 동아시아 정상회담(12월) 등의 일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본인의 공약 이행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깜짝 쇼'를 선호하는 고이즈미의 정치 스타일을 감안하면 8.15 참배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우익 단체와 우파 정치인들은 8.15 참배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60년이나 지났는데 언제까지 주변국 눈치를 봐야 하느냐"는 논리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손녀 등은 방송에 나와 공공연히 8.15 참배를 촉구하고 있다. 자민당 소장파 의원 116명은 지난달 28일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 2001년엔 8.15 직전 날짜 앞당겨=고이즈미가 8.15 참배를 강행하려다 직전에 물러섰던 전례도 있다. 취임 첫해인 2001년, 당초의 D-데이는 8.15로 잡혀 있었다. 이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관방장관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8월 13일 강경파 측근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긴급회의를 소집해 "우다웨이 중국 대사가 15일만 피하면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고이즈미는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가자"고 말해 곧바로 야스쿠니 신사로 출발했다. 당시 15일 참배를 주장했던 한 측근은 사표를 제출하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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