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초자치 존폐 가르는 제주 주민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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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늘 제주도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투표가 실시된다. 지난해 7월 주민투표법이 시행된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주민투표'를 통해 해방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행정 계층구조를 개편하는 문제에 관해 해당 주민들의 뜻을 묻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 도민들이 높은 자치 역량을 발휘해 투표에 참여하고 합리적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이번 주민투표에 부쳐진 사안은 도와 시.군 체제를 현재대로 유지하는 안(점진적 대안)과 4개 시.군을 2개로 통합하고 시장.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하는 안(혁신적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채택된 대안은 연내 제정될 예정인 제주특별자치도 특례법에 반영돼 내년 지방선거부터 시행된다. 혁신적 대안이 채택될 경우 시.군의 자치 권한이 폐지되고 도(道)로 단일화된 광역자치 체제로 개편된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투표가 정작 도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혁신안이 채택될 경우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기초단체 공무원들이 투표 홍보에서 손을 놓았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 광역.기초단체 공무원의 갈등, 의견이 갈린 사회단체의 공방전이 주민들의 냉소적 분위기를 부추겼다. 낮은 투표율과 편 가르기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두 대안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점진안은 지방행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기초단체별 특성에 맞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반면 행정의 고비용.저효율이 문제다. 혁신안은 행정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지만 기초자치가 폐지되는데 따른 주민 참정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제주도를 특별자치도로 만들려는 것은 획기적인 자치권 행사로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이 가능토록 하기 위한 취지다. 제주도 인구는 서울의 큰 구(區)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를 4개 시.군으로 나누고 다시 도와 시.군의 계층을 두는 행정체제가 과연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까. 이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도민들의 몫이다. 이 판단에 공무원들의 이해관계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