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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폼나는 메이저리그, 문제는 폼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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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직전인 2012년, 류현진(27·LA 다저스)은 한화에서 9승(9패, 평균자책점 2.66)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지난해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 올해는 14승7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국내보다 메이저리그에서 매년 5승씩 더 거둔 것이다. 류현진을 잡기 위해 다저스가 쓴 포스팅 비용(이적료)은 2573만 달러(약 280억원)였다. 당시엔 다저스가 과잉 투자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류현진은 몸값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국경을 넘는 순간, 기록의 신뢰도는 떨어진다. 과거 성적은 참고사항일 뿐 미래가치가 더 중요하다. 선수의 미래는 숫자가 아닌 폼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 구단 스카우트의 경험과 직관에 의해 작성된 ‘스카우팅 리포트’는 그래서 중요하다. 2년 전 미국 격주간지 베이스볼아메리카는 ‘류현진이 60점 이상(80점 만점)의 체인지업을 던진다. 피칭 메커니즘이 좋아 다저스의 3선발로 뛸 수 있다’고 쓴 다저스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정확한 예측이었다.

류현진에 이어 김광현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을까. 왼팔 서 나오는 강속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지나치게 큰 투구 폼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중앙포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김광현(26·SK)·양현종(26·KIA)·강정호(27·넥센)가 잇따라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현역 투수 중 빅리그에 가장 근접한 걸로 기대됐던 김광현에 대한 포스팅 액수(응찰액)가 류현진의 12분의 1(샌디에이고 20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광현은 류현진의 오랜 라이벌이었지만 메이저리그가 느끼는 리스크가 꽤 크다는 의미다.

 김광현은 빅리그에도 귀한 왼손 ‘파이어볼러’다. 시속 150㎞ 이상의 패스트볼에 날카롭게 꺾이는 슬라이더를 갖고 있다. 올 시즌 13승, 8년 통산 83승을 거뒀다. 메이저리그가 탐낼 ‘스펙’이지만 응찰액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이는 메이저리그 1라운드 신인의 평균 계약금이지 선발투수를 사오는 금액은 아니다. 김광현의 공이 빠르다 해도 메이저리그 타자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다. 류현진처럼 제구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폼이 크고 거칠어 부상 우려가 있다는 건 약점이다. 김광현은 2012년 왼쪽 어깨 부상을 당했다.

 올 시즌 40홈런을 때린 강정호의 셀링 포인트는 ‘장타력을 갖춘 유격수’다. 약점은 ‘외다리 타법’이다. 오른손 타자인 그는 왼발을 크게 올려 힘을 모은 뒤 타격한다. 특정한 구종과 코스를 예측하고 노려치는 타법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외다리 타법으로 성공한 타자는 거의 없다. 강정호가 타격폼을 바꾸거나, 유격수에 안착하지 못하고 2루수나 3루수로 전환한다면 상당한 감점요인이다.

 왼손투수 양현종은 17일 포스팅을 요청했다. 그는 시속 140㎞ 중반대의 빠른 공을 던진다. 류현진만큼은 아니지만 김광현보다 제구력이 좋은 게 장점이다. 문제는 체력이다. 키 1m83㎝, 체중 85㎏(프로필 기준)의 체격은 메이저리그에선 작은 편이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이 전반기 3.56에서 후반기 5.62로 뚝 떨어진 건 체력 문제였다. 3시간 시차가 나는 미국 땅을 오가며 정규시즌 162경기를 치를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류현진의 성공은 다른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세 선수의 올 시즌 성적은 류현진의 2012년 기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은 면도 있다. 그러나 류현진과 비슷한 성적을 내는 것과, 류현진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류현진은 동산고 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은 적이 있지만 매끄러운 투구폼으로 부상 재발 우려를 씻어냈다. 또한 공격적 성향의 메이저리그 타자를 상대하기 딱 좋은 체인지업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교한 컨트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김광현·강정호·양현종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메이저리그가 류현진과 이들을 다르게 보기 때문에 이들도 류현진과 다른 기준(이적료·연봉 등)을 가져야 한다. 김광현은 작은 응찰액을 받아들이며 그걸 인정했다.

김식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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