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와 실행착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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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일에서나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또 어느 일에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엇갈리는 견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지금부터 1백여년전인 1867년에 미국은 제정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백20만달리에 사들였다.
이 알래스카 매인에 앞장섰던「슈어드」국무장관은 사상최고가격으로 냉장고를 산 바보얼간이라는 욕을 먹었다.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알래스카를 그처럼 엄청난 값으로 팔아넘길수 있었던(?) 러시아의 재상은 따라서 대단히 현명한 인물이란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4년후에 알래스카에서 엄청난 사금상이 발견되고 30년후에도 또 금광상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는 온통 금싸라기 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슈어드」국무장관은 알래스카가 노다지판이 되리라는 예견아래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당시로서는 엄청난 값으로 매입한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는그저 몇십년 후인가 알래스카가 차지하게될 지정학적 군쟁적가치를 보고 매입 하려했던것이다.
그만큼 그는 먼 앞을 내다볼수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개인적인 인기보다는 나라를 위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미국이 그처럼 크게 자랄수 있던 것도 나라를 아끼는 사람들이 정치의 앞장에서 일할수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사채양생화방안」에 대한 견해들도 크게 두갈래로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큰 일을 하자면 그만큼 과감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환영한다. 또 한편에서는 경제학이논에는 밝지만 사회경제에 대한 넓은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 큰일을 저지른게 아니냐면서 우려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개의 의견에는 각기 그럴싸한 근거가 있다. 환영하는 쪽에서는 엄청난 탈세로 살쪄가는 사채시장의 양생화를 위해서도 도저히 풀리지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알렉산더」대왕처럼 과감한 조치를 써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무리 사채시장이 거대하다 하더라도 전체 금융질서속에서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채의 양성화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꼭 빈대한마리를 잡자고 초가망간을 다태우는 격이 아니냐는 것이다.
가장 크게 의견이 엇갈려지는게 3천만윈까지는 자금출처를 묻지않는다는 대목인것같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어쩔수없이 그만한 돈을 눈감아주지 않으면 안되며 모 선의의 예금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잘한 일이라고 한쪽에서는말한다.
그러나 여기 맞서는 쪽 애기도 그럴싸하다.
말이 3천만원까지라지만 한가족단위로 보면 1억5천만원까지는 그게 아무리 뒤가 구린 돈이라해도 눈감아 준다는것은 단돈 1백만원도 예금하기가 어려운 다수의 시민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최선의 정치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게어렵다면 적어도 불만을 품은 사람보다 만족하는 사람이 월등히 많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하다.
3천만원이라는 선을 그을 때에도 그만한 돈을 한평생을 두고일한다해도 무슨 수로 예금할수 있겠느냐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더 많겠는지를 한번쯤생각했어야 옮았다는 얘기다.
이 얘기가 맞는다면 3천만원의 한도는 많은 사랍들에게 새삼스레 자기네가 얼마나 남들보다 못 살고 있는가를 일깨워준 것으로 끝났을 뿐이다.
이자율을 8%로 뚝 떨어뜨린 것도 참 잘했다고 보는 쪽과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이 날카롭게 대립되고 있다 잘 했다고 보는 쪽은 물론 돈을 빌어쓸 일이 많고 또 빌어쓸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 이자돈을 바라고 한푼 두 푼 은행에 맡겨 온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늘이 꺼진 것처럼 낭패거리다.
불과 반년사이에 은행이자가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30만원짜리 근로소득자가 5백만원을 예금해서 해마다 받던 90만원이 앞으론 45만윈밖에 안된다면 그만큼 가계에 주름이 잡힌다.
마이홈의 꿈은 무산된 것이다. 딴 수입하나 없이 은행이자 돈만으로 살아오던 퇴직자가족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느냐는게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항의하는 쪽 얘기다.
하기야 이자가 아무리 떨어져도 모든 물가가 그보다 훨씬 밑돈다면야 크게 걱정할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한자리표 물가상승율을 장담하지 못하게 된 판국이다. 걱정이 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날이 지나도 이상하게도 대책발표자들은 물론이요 해설자들도 여기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그저 비싼 이자를 따라 해외로 재산이 도피될 것만을 염려하고들있다.
좀스런 일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말로 일할 맛이 나고 누구나가보람을 느끼며 살도록 하자면이련 도피시킬만한 돈도, 주변도 없는 서민들의 꿈을 가장소중하게 여기는 정책이어야 할것이 아니겠는가.
기자회견때「처칠」에게 한 기자가『홀륭한 정치가가 될수있는 재능은 뭣이냐』고 물었다.
『그것은 내일을, 내년을, 산년후를 예언할수있는 재능이다. 그리고 그 예언이 빗나갔을때에는 그것을 적당히 물러설수있는 재능이 또 필요하다』고「처칠」은 대답했다.
그러나 한나라와 경제를 도맡은 정책결정자는 정치가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것은 책임감이다. 큰일을 하다보면 시행착오도 있을수 있다고 둘러댈수 없는게 경제인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소한 시행착오가 국가경제발전의 바늘을 몇년이나 되둘려놓고 몇백만의 시민을 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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