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설의 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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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때 「남발」이란 인상마저 주어온 신규 대학의 설립 허가가 내년에는 모두 묶이게 되었다. 문교부는 83년도에는 대학 신설을 일체 허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27개 대학의 설립 신청 서류를 반려했다.
대학 신설을 억제하는 쪽으로 문교부가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은 한마디로 졸업정원제 실시 이후 학생 수는 50% 이상 늘어난 데 비해 학교 시설이나 교수요원은 이를 뒤따르지 못해 충실한 대학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오늘날 우리의 대학이 그 질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정도로 교육 여건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한 채 학생 정원만 급격히 늘려 놓은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현재 97개 대학 19만 7천여 명에 이르는 입학 정원이 현시점에서 적정수준인지는 차지하고라도 교수요원 및 시설이 너무 부족해서 도대체 이런 여건 하에서 대학이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 강좌에 몇백 명의 학생을 몰아 넣어 마이크까지 동원해서 갖는 강의는 우리 나라가 아니고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강의 모습이다.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느끼는 곤혹도 그렇지만 교수들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의 성격이나 실력은 커녕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대학교육이 정상적인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한사람의 교수가 한꺼번에 몇백 명의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까닭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학생들을 가르칠 시설이나 교수요원을 확보하지 못한데 있다.
우리 나라의 교수 1인당 학생의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것이 대학교육의 질과 관련해서 문제점으로 부각된 지는 오래된다. 대학이 학생들의 자습을 통해 학력을 향상시키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전수 받는 곳이라고 한다면 교수, 그것도 학문의 세계적 추세에 뒤지지 않는 우수한 교수를 확보해야 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우리의 대학교육 시책도 물론 우수 교수의 확보란 대 명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외두뇌의 유치, 교육요원의 해외연수 등 투자도 하고 노력을 했다고는 하지만 만족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대학교육의 질이 외형적인 팽창에 반비례해서 저하일로에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교육정책은 고등교육의 보편화 쪽으로 기울음으로써 교수 부족 현상은 심화하기만 했다.
시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공립대학은 그래도 나은 편이고 재원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는 사학의 경우 수요에 대응할 만큼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최소한의 시설마저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형편에서는 설혹 대학교육을 받은 고급인력이 더 많이 요구된다는 판단이 선다 해도 무작정 대학을 늘리고 대학생의 정원을 증원해 줄 수는 없다. 교수나 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학사, 석사를 많이 배출한다 해서 그들이 사회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는 어렵다.
대학 신설을 당분간 억제키로 한 정부의 방침은 따라서 현시점에서는 타당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세운 바 명분인 대학의 질 향상을 위해서 정부가 어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결국 「튜토리얼」(개인지도교수) 제도의 확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선진국에서의 경험은 가르치고 있다. 튜토리얼 시스템은 학생 당 교수의 비율을 거의 대등할 만큼 높이는 것이며 따라서 이 제도의 실시를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막대한 추가 투자가 요구된다.
대학교육을 대중화, 보편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굳힌 이상 대학의 질을 높여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학자금이 낭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길은 정부의 교육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뿐임을 새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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