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0일, 3주는 길죠 … 모바일 여론조사는 3시간에 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오픈서베이의 직원 30명 중 절반인 15명은 기술개발 인력이다. 김동호 대표는 “기술과 사람이 우리의 자산”이라며 “기술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원가를 더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1908년 미국 포드자동차는 공장에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직원들은 자동차 조립공정에 따라 흘러가는 컨베이어 옆에서 부품을 조립하기만 하면 됐다. 그 결과 자동차 한 대당 생산시간은 630분에서 93분으로, 가격은 2000달러에서 290달러로 줄었다. 그렇게 탄생한 첫 모델인 ‘포드 T’는 1925년까지 1500만대 판매되며 누구나 자동차를 탈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리서치 업계의 포드T를 꿈꾸는 곳이 있다. 김동호(27) 대표가 2011년 문을 연 ‘오픈서베이’다. 오픈서베이는 전화조사와 대면조사가 대부분인 여론조사에서 최초로 모바일 리서치를 개발했다. 일반인들이 앱을 깔아 설문조사에 참여하면 커피나 작은 사은품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한 후 3년 만에 소비자 패널 30만명을 확보했고, 고객사가 550개에 달한다. 지난 7월에는 KTB네트워크에서 34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오픈서베이는 김 대표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김 대표는 2010년 곰플레이어로 유명한 그레텍 신사업기획팀에서 일했다. 당시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위해 리서치 회사를 찾았지만 높은 비용의 벽에 부닥쳤다. 스마트폰 이용자 1000여명에게 15개 문항을 설문조사 하려고 했는데 업체에서는 3000만원을 요구했다. 김 대표는 “수집·조사·분석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돼 인건비가 많이 들었다”며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면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업계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으나 한결같이 ‘이 업계가 얼마나 보수적인 줄 아느냐. 시대가 바뀌어도 전화 조사방법은 변하지 않는다’며 창업을 말렸다. 하지만 그는 2011년 모아둔 돈 2000만원을 가지고 KAIST 부설 과학영재고등학교 동창생 두 명과 함께 서울 용산 전자상가 6평짜리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보증금과 컴퓨터, 기본 집기를 갖추는 데 1000만원이 순식간에 들어갔다. 1년에 가까운 연구개발 끝에 앱을 내놓은 12월 17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해 준비했던 이벤트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빠른 시장조사에 목말라 있던 소비재 기업들이 오픈서베이를 찾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1000명을 대상으로 30문항을 조사할 경우 오프라인은 30일, 온라인은 3주가 걸리는 것과 비교해 오픈 서베이는 3시간이면 끝난다. 조사설계-데이터수집-분석-리포트 작성(시각화)의 네 가지 과정 중 수집과 분석, 시각화하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인 결과다. 김 대표는 “기존 설문조사는 주로 수작업이나 엑셀로 자료를 분류하고 리포트를 만들기 때문에 단순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우리는 이 과정을 모두 컴퓨터 프로그래밍화 했다”고 말했다. 분기별 조사를 하던 업체들은 월별, 주별, 일별 조사로 기간을 단축해 시장의 흐름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됐고 더 자주 조사를 의뢰했다.

오픈서베이는 설문조사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문항수와 표본수에 따른 가격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표에 없을 경우 ‘가격계산기’에 입력하면 비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오픈서베이]

 비용도 줄었다. 수천만원대이던 조사가격이 수백만원대로 많게는 10분의 1까지 떨어졌다. 전문 연구원들이 분석하던 데이터를 컴퓨터가 순식간에 해내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타자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기업들도 하나둘 조사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현대카드를 비롯해 한국쓰리엠, 옥시렉킷밴키저, 위메프 같은 소비재 기업은 물론이고 SBS·CJ E&M 같은 방송사, 경제·인문사회연구소 등 다양한 고객이 오픈서베이를 찾았다.

 가격이 싸지니 새로운 고객도 생겨났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조사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내던 작은 기업이나 부서들이 모바일 리서치를 쓰겠다고 나섰다. 벤처 회사,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 중소기업도 고객이 됐다. 김 대표는 “포드 자동차에서 모델 T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며 “리서치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저렴해지면 잠재 수요가 실질 고객으로 돌아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조사를 의뢰하는 고객들은 잠재고객의 1%에 불과하다”며 “앞으로도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다”고 말했다. 오픈서베이는 현재 550개 회사와 계약하고 매년 1200~1300건의 조사를 진행한다.

 정확도도 오프라인 조사 기관 못지 않다. 지난 총선에는 JTBC와 함께 선거 당일 여론 조사를 진행해 지상파 방송과 ‘맞짱’을 뜨기도 했다. 20~40대는 오픈서베이가 모바일 조사를, 50~70대는 현대리서치가 전화 조사를 해 결과를 종합했다. 김 대표는 “당시 지상파 출구 조사는 50억여원이 들었고 우리는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을 들였는데 정확도는 거의 비슷했다”고 말했다. 당시 남경필 경기도 지사의 당선을 예측한 곳은 JTBC 뿐이었다.

 공공연한 ‘영업비밀’이던 조사 가격을 공개한 것도 오픈서베이가 처음이다. “리서치 회사에 조사를 의뢰하면 비용 협상에만 두 세차례 미팅이 필요하다. ‘원래 1500만원인데 특별히 1000만원에 해드리겠다’는 식이다.” 그는 반대의 전략을 폈다. 홈페이지에 가격 계산기가 있어 패널 수와 문항수를 넣으면 바로 조사비용이 나온다. 200명에게 1~5문항을 질문할 경우 20만원, 1000명을 상대로 21~25문항을 조사할 경우 150만원이다.

 김 대표는 “리서치의 본질은 설문 조사 자체가 아니라 고객이 데이터에 기반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설문 조사는 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객이 가진 궁금증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패널 동의하에 모바일 기기가 자동으로 저장하는 로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나, 동선·검색기록·즐겨찾는 앱 등을 통해 관심사를 파악하면 굳이 ‘○○ 앱을 쓰고 있습니까. 만족합니까’ 등의 설문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맨땅에 헤딩해 3년 만에 수십억 매출을 달성한 그에게 사업 목표에 대해 물었다. 김 대표는 “‘2020년까지 매출 20조’ 같은 매출 목표는 공허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술을 이용해 리서치의 원가를 낮춰 이용자를 늘리고, 다양한 데이터를 동시에 보여줘 기업이 더 정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