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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정보기관과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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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의 정보기관은 세 번에 걸쳐 대규모 개편 압력을 받았다. 첫번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후에, 두번째는 91년 소련 해체후, 그리고 세번째는 2001년 9.11테러 후다. 두번은 치명적인 실패의 경험에서, 한번은 냉전의 종식과 승리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41년 이전까지 미국의 정보기관은 육군의 정보참모부(G-2)와 해군의 첩보대(CIC)가 전부였다.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연합군의 정보력에 크게 의존했다.

종전(終戰) 후 정보 의존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비등했다. 하지만 종합 정보기구의 탄생은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일거에 바꾼 사건이 41년 발생한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다.

미국 최초의 종합 정보기관인 전략정보국(OSS)은 이렇게 42년 2월에 탄생한다. 이후 OSS는 세력갈등으로 인해 방첩과 비밀정보 파트는 국방부에, 연구분석 파트는 국무부로 분할 이관됐다. 하지만 미국이 전 세계적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46년 2월 다시 중앙정보단(CIG)이 창설됐고 이후 CIA로 발전했다.

91년 12월 발생한 소련 해체는 CIA를 변화의 압력 속에 밀어넣는다. 클린턴은 경제정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CIA를 개편하고자 했다. 하지만 3백억달러에 달하는 첩보예산 중 80% 이상을 관장하는 국방부의 몫은 도저히 빼앗아올 수가 없었다.

국방부가 미영상지도청(NIMA) 등 3개 위성정보 기관을 관장하고 이의 이전과 공유에 결사적으로 반발했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능력과 영향력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다. 의회는 9.11을 예방하지 못한 미 정보기관의 실패가 예산과 인력의 부족이 아닌, 첩보 시스템의 실패라며 개혁을 요구, 현재 개혁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정보기관 및 관련 기관의 관료제 개혁에 그치지말고 첩보 수집 및 활용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정보의 유통과 생산, 가공 시스템이 바뀌어 워싱턴의 정치도 개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새 정부 들어 국정원 개혁에 대해 말들이 많다. 미국이 치명적 실패를 경험한 후 개혁에 나선 것보다는 좋은 형국이지만 이왕 개혁을 하려면 인적.관료제 개혁이 아닌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 정권이 아닌 국가에 기여하는 개혁이 되길 기대한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