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벙개'하면 안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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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니, 이렇게 비싼 술을?"

내가 비장의, 선물받은 고급술을 내어 놓자 손님이 반색했다.

"'조블'이 왔으니 '조니 블루'가 '당근'이지."

"선생님, '조니 블랙'도 '조블'인데요?"

"아이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갔구나!"

중앙일보가 운영하는 사이버 공간 조인스닷컴의 개인 블로그, 약칭 '조블' 운영자와 나 사이에서 실제로 오간 대화다. 사족을 달자. '블루'는 '블랙'보다 훨씬 비싼 술이다. 소통의 속도에 관한 한 '끝내 준'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직업과 무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처럼 왕성하게 글을 쏟아내는 시절이 또 있었던가 싶다. 사이버 공간이 글과 말로 넘친다. 내가 속해 있는 사이버 모임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40~50대다. 그런데도 누가 글을 올리면 '굴비(댓글)'가 20~30 마리나 달린다. 이 중에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도 있다. 낯선 단어도 자주 눈에 띈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말은 줄임말이다. 속도를 내지 못하면 본전도 못 찾는 데가 이 사이버 공간이다. 가령 '걍(그냥)' '샘(선생님)' '토욜(토요일)' '넘(너무)' '그람(그러면)'이 여기에 속한다. 'ㅋㅋ(크크)' 이렇게 소리 죽여 웃는 회원도 있다.

미국의 한 대학에 세계 여러 나라 시인이 자기 나라 말로 시를 낭독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탈리아 말과 스페인 말은 떼굴떼굴 굴러가는 것 같았다. 프랑스 말은 '공시랑공시랑'거리는 것 같았다. 중국어는 혀에 척척 감겨드는 것 같았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우리말이 듣기에 무척 아름다운 말은 아니구나, 이런 참람하고, 송구스러운 생각을 했다. 자음과 자음이 자꾸 겹치면서 어디엔가 턱턱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알타이 말에 속하는 터키 말이나 몽골 말을 들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음과 자음이 부딪치는 것이 싫은 모양인가? '쥐기네(죽이네)' '노라조(놀아줘)' '보고시포라(보고 싶어라)' '쉬고자포라(쉬고 싶어라)' '시로(싫어)', '디따 마나요(굉장히 많아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저나버노(전화번호)'와 같이 기발하게 진화한 말도 있다.

이들이 우리말을 파괴하고 있는가? 이들이 우리말을 오염시키고 있는가?

자주 쓰는 말 중에 '벙개'가 있다. '번개같이 모여 한잔 한다'는 뜻이다. 나도 '번개' 제안을 더러 하는데 우리말을 파괴하고 싶은지, 오염시키고 싶은지 '번개'보다는 '벙개' 쪽으로 기운다. 고백하거니와 '벙개'가 아무래도 새로운 풍속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 딱 한 번 써본 적이 있다.

걸쭉한 사투리를 잘 구사하는 작가에게 돌아간 한 문학상 심사 보고에 '표준어의 무색무취함에서 벗어나'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표준어가 무색무취하다니? 그렇다면 향기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오해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쓰거니와, 나는 사이버 공간에 쓸 때도 신문에 쓰는 것처럼 반드시 어법에 맞게 쓰려고 노력한다. 혹 잘못 쓴 말이 있으면 '교정본능'이라고 쓰고 반드시 고쳐 쓴다. 이런 점에서는 보수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안 될까? 표준말이 무색무취할 수 있다면, 어법에 한 치 어긋남이 없는 글은 좀 무표정하다고 할 수 없을까? 그런데 누리꾼이 부리는 말을 가만히 보면 쓰는 이의 다양한 표정을 읽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신선하고 귀엽다. 글과 글 사이에 박힌 무수한 '이모티콘(감정이 개입된 기호)'을 보고 있으면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글이 비로소, 우리 글에 원래 없던 표정을 새로 획득하는 것 같다. '께꼬(가죽구두)'와 '푸시게(담배)'는 우리가 청소년 시절 은밀하게 쓰던 은어다. 아무 표정도 없는 이런 말을 지금 누가 기억이나 하는가?

경음(ㅆ, ㅉ, ㅃ)을 쓸 때마다 우리는 '밀기(shift)'를 누르는 수고를 따로 해야 한다. 우리말이 컴퓨터로 두드리기에는 조금 불합리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누리꾼이 물길을 제대로 터 주어야 다음 세대가 그 물길로 흐를 텐데.

이윤기 소설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