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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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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 귀하.

올해로 기자생활 22년째입니다. 정권이 네 번 바뀌었지요. 그 탄생과 소멸을 지켜봤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이서 말입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권력의 허무함입니다. 그 유한함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권력은 그걸 모른다는 겁니다. 잡고 있는 동안은 말입니다. 너무 커서 그럴 겁니다. 그 힘에 취하는 거지요.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권력은 교만해졌습니다. 그 때문에 세상과는 멀어져 갔지요. 세상은 권력을 외면했고 그럴수록 권력은 권력에 집착했습니다. 마치 마약을 찾는 이치와 같지요. 그 맛을 못 잊는 겁니다. 결국 권력은 연장(延長)을 꿈꿨습니다. 내각제입니다. 역대 정권마다 나왔지요. 크든 작든 말입니다. 물론 매력있는 제도입니다. 특히 떠나는 권력에겐 말입니다. 권력을 나누니까요. 현실 권력을 기준으로 말입니다. 지분을 확보하는 겁니다. 영향력이 유지되지요.

그러나 성사되진 못했습니다. 미래 권력 때문입니다. 이른바 대권 예비주자들이지요. 여든 야든 말입니다. 통째로 먹으려던 사람들입니다. 지분엔 관심이 없지요. 그러니 반대했습니다.

권력은 다음 대안을 찾더군요. 스스로 권력을 만들려 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말입니다. 권력 연장의 또 다른 방편입니다. 빚을 지게 만드는 거지요. 지분 대신 채권을 확보하는 겁니다.

우선은 누구를 만드느냐였습니다. 기준은 뻔했습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기준입니다. 나와 가까워야 했지요. 나를 지켜줄 사람이 1번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깝다고 다가 아니지요. 이길 수 있어야 했습니다. 상대가 강할수록 말입니다. 물론 두 가지가 일치하면 다행이지요. 그러나 그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밀었습니다. 그러면 내 사람이 된다 생각했지요.

그러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당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권력한테 말입니다. 권력은 만드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진' 권력의 속성 때문입니다. 자기를 '만든' 권력을 치고 말지요. 그래야 명실공히 권력이 되니까요. 그래서 허무하지요.

대통령은 얼마 전 연정(聯政)을 제의했습니다. 여소야대 때문이라 했습니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였지요. 그러나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야당은 그러라고 있는 겁니다. 연정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라질 게 없습니다. 혹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내각제를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다시 생각하십시오.

대통령은 지금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외부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내부와의 싸움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싸움입니다. 대통령에겐 많은 동지가 있습니다. 형제 이상일 겁니다. 그들과 정권도 잡았습니다. 지금까진 그들과 이해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턴 다릅니다. 그들은 젊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권력의 끈을 놓기 어렵습니다. 앞날을 설계해야 하니까요. 결국 권력의 연장을 꿈꿀지 모릅니다. 내각제를 생각하겠지요. 그 다음엔 권력을 만들자고 할 겁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자기를 위해섭니다.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입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권력입니다. 지금이 종점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같아서도 안 됩니다.

임기의 반을 넘긴 대통령입니다. 내각제가 왜 필요합니까. 무슨 상관입니까. 내각제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나설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차기 권력의 문제입니다. 그들이 논할 문제입니다. 그들도 나라를 걱정합니다. 필요하다면 그들이 만들겠지요. 그럼에도 집착한다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다.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지금에 충실하십시오. 간단합니다. 경제부터 살리십시오. 약속을 지켜야지요. 권력의 허무함을 기억하십시오. 헛되고 헛된 겁니다. 떠나는 권력의 새 역사를 쓰십시오. 박수받고 떠나는 권력이 되십시오.

이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