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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깊이보기 : 고유가 시대…다시 원전을 생각한다

장점 훨씬 많지만 안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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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국제 유가가 최근 배럴당 60달러를 넘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머지않아 100달러 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나온다. 부존 에너지가 거의 없는 한국으로서는 고유가에 따른 경제적 고통을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자력에너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970년대와 80년대 북한과의 경쟁에서 앞선 이유를 원전 건설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원전은 고유가를 이겨내고 안정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원자력에너지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다. 값싸고, 환경을 거의 파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력 에너지 자립도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한국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자력의 장점을 인정한다 해도 꺼림칙한 대목이 남는다. 안전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 입안자도, 사회 지도층도 친원자력 발언을 하는 데는 몸조심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기술 주도형 에너지=원자력은 풍력.태양광.수소에너지와 함께 기술주도형 에너지다. 자원주도형 에너지는 원유.무연탄.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다. 기술주도형 에너지는 기술만 있으면 적은 비용으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원자력의 경우 연료에 해당하는 우라늄을 구입하는 비용은 전기 생산단가의 1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총 소비에너지의 15%를 충당하고 있다. 화력발전의 경우 전기 생산단가에서 차지하는 연료 구입 비용은 확 늘어난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은 연료비용이 생산단가의 42%를, 석유의 경우 78%를, 액화천연가스는 69%를 차지한다. 이는 자원주도형 에너지 생산 설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2004년 에너지 순수입액은 393억 달러(약 40조원)에 달한다. 이 중 원자력발전 연료인 우라늄 수입액은 약 3억 달러로 전체 에너지 수입액의 131분의 1이다. 이것이 국가 총소비 에너지의 6.6분의 1을 담당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수소에너지는 기술만 있으면 연료는 전혀 수입할 필요가 없다. 빛이나 바람.수소는 어느 나라나 거의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원자력 발전과는 달리 지금이나 앞으로도 오랫동안 보조에너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수소에너지는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 많은 미래 에너지 기술이다. 풍력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태양광은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면 전력을 생산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의 경우 대부분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용 풍력 발전소도 거의 없다시피 하며, 몇 군데 시범 사업용으로 있는 풍력 발전기 역시 일본이나 독일 등 외국에서 수입해 설치하고 있다. 수력의 경우 추가개발할 곳이 많지 않다.

전력 생산 단가를 비교해보자. 원자력은 40원, 석탄 42원, 석유 76원, 액화천연가스 119원, 수력 74원, 풍력 108원, 태양광 716원이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전력은 환율이 2~3배 뛰어도 전기료를 올리지 않았다. 환율이 오른 것에 비례해 에너지 수입 비용은 그만큼 뛴다. 그런데 전기료를 올리지 않아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라늄 값이 전기 생산 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말했다. 만약 환율이 뛴 만큼 전기료를 올렸다면 외환위기를 타개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세계적이다. 핵심설비인 원자로를 자체 설계하고 있으며, 원전 건설도 독자적으로 한다. 외국에 각종 원자력 설비를 수출하고 있을 정도다. 후진국이나 개도국의 경우 원자력 발전을 하려 해도 모든 기술과 건설을 외국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는 30여 년 동안 쌓은 원자력 발전 기술의 수준이 독창적인 원자로를 개발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장순흥 교수의 말이다.

각국은 에너지 자립도 비율을 산정할 때 우라늄 수입 여부와는 상관없이 원자력에너지는 자국산에 포함한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3%와 원자력, 수력을 포함해 에너지 자립도가 18%다. 프랑스는 부존 자원이 거의 없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원자력발전을 1970~80년대에 대폭 늘려 에너지 자립도를 51%로 올렸다. 한국은 원전으로 전체 소비 전력의 40%를 충당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85%(나머지는 수력.재생에너지로 충당)다.

◆친환경 에너지=원자력발전소가 방사선을 내는 쓰레기를 배출한다고 해서 일반 쓰레기에 비해 환경을 더 해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원전은 발전 중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31%를 화력발전소가 배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발전소용 부지 면적을 보자. 원자력 발전소 1기를 짓는 데는 15만 평(여의도 면적의 17분의 1)이면 되지만 그와 같은 양의 전력을 풍력발전기로 생산하려면 7500만 평(여의도 면적의 30배)이, 태양광은 2000만 평(여의도 면적의 8배)이 필요하다. 국내 원자력 발전을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대체하려면 엄청난 땅을 태양전지판과 풍차로 뒤덮어야 할 것이다.

◆막대한 우라늄 부존량=우리나라는 연간 우라늄 4000t 전량을 수입한다. 충청도 일대에 우라늄 광맥이 있지만 질이 낮아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소요량은 연간 6만5000t이다. 세계 확인 매장량은 460만t으로 앞으로 7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또 확인되지 않았지만 980만t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닷물 또는 지각 속에도 수만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우라늄이 있다는 게 한국수력원자력 측의 설명이다. 우라늄 고갈의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원자로 기술이 발전하면 한국에 널려 있는 토륨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막연한 불안감 줘=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과 원자력 폭탄 등이 연상됨에 따라 불안감을 주는 게 원전의 단점이다. 그러나 한국의 원자력 발전 27년 동안 원자로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원전 주변 주민 또는 종사자들이 기형아를 출산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원전 주변 주민의 암 발병률이 한국 평균보다 더 높다는 보고 역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주변 주민들은 심리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방사성 쓰레기 배출=원전은 방사선을 내는 쓰레기를 배출한다. 방사선에 오래 노출되면 암이 발생하는 등 건강을 해친다. 세계 각국은 이런 쓰레기를 귀금속 다루듯 철저하게 관리한다. 이중 삼중으로 밀봉해 지하에 묻는다. 그러나 일반인의 우려와는 달리 방사선이 아주 약하게 나오는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원전 작업자들이 쓰던 장갑이나 옷 등이고, 철저하게 관리하기만 하면 주민들에게 거의 해가 없다는 게 원자력 전문가의 말이다. 관리가 소홀한 일반 쓰레기보다 오히려 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