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붙일 곳 없는 PL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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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라 없는 팔레스타인 민족이 지금 또다시 레바논에서 쫓겨날 기구한 운명에 처해있다.
이스라엘의 남부레바논침공 1주일만에 모든 근거지를 짓밟힌 팔레스타인민족해방기구 (PLO) 는 마지막 남은 근거지 서 베이루트 안에 갇힌 채 그들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놓여 있다.
PLO가 마지막 기대를 걸고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외교적 노력.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파하드」국왕의 대미 압력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휴전에 동의케 할 정도였으 며 따라서「파하드」국왕이 어떠한 외교적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PLO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할 수도 있다.
친 이스라엘장관으로 알려진 「헤이그」미 국무장관을 사임케 하고 친 아랍의「슐츠」장관을 후임에 앉힌 것도「파하드」국왕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란 것이 서방외교소식통들의 유력한 견해다.
그러나 군사적 승리를 거두어 PLO의 목을 조르는 유리한 입장에 서있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시리아 군 및 PLO무장게릴라를 포함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하고있어 이제까지 남부레바논에 근거지를 마련했던 팔레스타인민족은 다시 새로운 근거지를 찾아 방랑의 길을 떠나야만 될 운명이다.
현재 이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곳은 이집트 뿐. 그러나 이집트는 시오니스트 (이스라엘) 를 팔레스타인 땅으로부터 추방해야 한다는 그들의 목표를 위해 투쟁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곳이다.
이집트는 이미 78년 갬프데이비드 협정, 79년 중동평화조약을 통해 이스라엘과는 적대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나라다 .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이웃시리아와 요르단. 시리아는 다마스커스에 팔레스타인망명국민회의가 있는 등 인연이 있는 곳이지만 「아사드」시리아대통령이 환영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PLO세력이 강대해지는 것을 두려워 해온 시리아는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 초기에 수수방관함으로써 PLO가 쉽게 무너지게되었다고 아랍세계로부터 비난을 듣고 있는 처지다.
이스라엘은 현재 PLO에 항복을 하면 시리아로 가는 길을 더 주겠다고 하고 있다.
요르단의 경우 팔레스타인 민족은 치욕의 기억을 갖고있다. 그들이 『암흑의 9월』 이라 부르는 70년9윌 「후세인」요르단 국왕이 벌인 팔레스타인추방정책으로 요르단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7O년 초 요르단국민의 반 이상을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차지하자「후세인」왕은 요르단 군으로 하여금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이게 했고 이 내전에서 2만 명이 희생됐었다. 결국 9월 아랍정상회담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됐으나PLO게릴라들은 추방되고 말았다.
이번 레바논전쟁에서도 최근 PLO가 완전히 궁지에 몰리자 「후세인」왕은 급거 모스크바로 날아가 대 이스라엘방어문제, PLO장래문제 등을 크렘린지도자들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이들 국가들은 PLO가 자국 안에 들어와 대 이스라엘투쟁활동을 벌이면 이스라엘의 보복을 받을게 뻔하므로 PLO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있다. 못 버린 재무장의 꿈

<팔레스타인의 현황…>
지난 48년 이스라엘독립으로 살 땅을 잃어버리고 세계각지로 흩어진 팔레스타인민족은 현재 약5백 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중동각국에는 팔레스타인 인들이 안 들어 간 곳이 없고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일부 국가에서는 그들의 우수한 민족성을 발휘, 경제계·관계 등 사회각분야에 진출, 큰 역할을 하고있다.
이같이 흩어져 사는 5백만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기구가 PLO다. PLO는 64년1월 카이로아랍정상회담의 결정에 의해 조직, 탄생했다.
초기에는 이름뿐이었으나 지금은 다마스커스에 망명의회를 갖고있고 남부 레바논 등지에 2만∼4만 명의 비정규군을 갖고있다.
PLO는 이 밖에 세계각국에 1백8개소의 대표부와 정보사무소를 두고 외교관을 상주시키고 있다.
PL0산하에는 10억 달러에 달하는1년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기구도 갖추고 있어 PLO는 사실상 예비정부조직과 다를 바 없다. 10억 달러의 예산은 세계각국에서 보내는 이른바「해방세금」과 아랍국가들로부터의 재정원조로 충당되고 있다.
PLO는 현재 8개 게릴라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서로 이념과 투쟁방법을 둘러싸고 대립하고있다.
이스라엘군의 탱크와 야포가 베이루트의 바로 외곽에 포진하고 있는데도 온건파와 강경파사이에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혼란을 빚고 있다.
그래서·중동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에서 PLO가 베이루트를 포기하게되면「아라파트」의 PLO안에서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고 어쩌면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장이 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런 전망을 내리고있다.
74년은 PLO에 큰 전환점을 이루는 해였다. 바로 유엔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PLO는 테러에 의한 투쟁방식을 버리고 온건한 외교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했었다.
현재 PLO 의장직을 맡고있는 「야세르·아라파트」는 PLO의 아버지라 불리는「아메드·슈카이리」지도자로부터 PLO를 69년에 넘겨받았다.
이번 이스라엘군의 철저한 소탕작전으로 PLO안의 조직이 많은 타격을 보았을 것으로 중동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이제 팔레스타인민족은 그들의 활동거점을 어디에서 확보하느냐는 문제와 아랍국가들로부터 재무장에 필요한 재원을 얼마만큼 얻을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 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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