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으로 돌아가는 '탈북녀 교육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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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성 탈북자만을 전담 수용해 온 하나원 분당 분원이 22일 문을 닫는다. 경기도 성남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측과의 시설임대 계약이 만료된 데다 마땅한 대체 시설을 찾지못했기 때문이다. 분당 분원은 2002년 9월 개원 이후 3년 가까이 1000여 명의 독신 여성 탈북자가 거쳐갔다.

◆ 베일 벗은 여성 전용 시설='가'급 국가 보안 시설인 이곳은 경찰 경비가 삼엄하다. 탈북자 관리와 함께 테러 등을 막기 위해서다. 침대 3개가 각각 놓인 27개 방이 있는 3층 구조의 생활관에서는 최대 100명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탈북자 400여 명이 집단 입국했을 때는 최대 200명까지 수용해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 생활은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다. 오전 7시 일어나 강의와 실습.현장체험 등 빡빡한 일과를 소화해야 한다. 여성들이 남한에 정착하는데 유용한 미용.제빵.간병인 등 특화교육을 받는다.

은행에서 대기표를 뽑아 자기 계좌를 개설하거나 전철을 타보는 등 체험 활동도 한다. 오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군대식 점호를 치러야 잘 수 있다. 생활지도교사가 교육.생활에 대해 벌점식 평가를 한다. 이 평가는 지역.직장 배치나 정부 정착지원금 지급에 영향을 미친다.

분당 분원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은 까다롭다. 20세에서 50대 초반까지의 독신 여성만 가능하다. 혼자 한국에 입국했더라도 임신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어도 들어올 수 없다.

금남(禁男)의 공간이지만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꽃피기도 한다. 20~30대 교육생에게 주어지는 자동차 운전교육 등 외부와 접촉할 때 한국 남성과 눈이 맞는 경우가 있다. 분원 출신의 한 탈북자는 "북한 여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빚어진 남쪽 남자의 불장난 때문에 탈북 여성이 상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여성 탈북자 맞춤형 교육 필요=1999년 7월 경기도 안성에 지은 정착지원시설 하나원이 탈북자 급증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자 분원을 열었다.

정부는 월 4000만~7000만원의 임대료를 연수원 측에 내왔다. 3층짜리 자립관 전층과 협동관 일부 등 1026평을 교육.숙박 시설로 써온 대가다.

폐쇄 방침에 따라 이미 14일 교육생을 모두 내보냈다. 안양 등지에 옮겨갈 곳을 수소문했지만 '탈북자 시설이 들어오면 골치 아프다'며 거부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안성의 하나원 본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탈북 여성들이 떠난 곳에는 성남시가 추진하는 어린이 영어마을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탈북 여성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분원 운영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2년 처음으로 한 해 동안 입국한 여성 탈북자가 남성보다 많아진 이후 여성 비율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체 시설이 마련되면 별도 시설로 다시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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