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문제집도 궁합이 맞아야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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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를 직접 고르는 건 기본이고요, 내게 맞는 학습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해요.”

경기도 일산 백석고등학교 2학년 나상운(17)군은 올 1학기 중간·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축구부 주장을 맡을 정도로 공부 이외에도 적극적인 상운이는 사실 처음부터 1등은 아니었다. 이과지만 고교 입학 후 치른 첫 수학 시험에서 3등급을 받았다. 1학년 2학기 땐 국어 3등급을 받아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상운이가 최상위권으로 도약한 비결은 자신에게 딱 맞는 공부전략을 찾아내 실행한 데 있었다.

노트 필기에도 상운이만의 요령이 숨어있다. 수학은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풀이과정과 공식을 꼼꼼히 적고, 영단어는 전날 외운 단어를 매일 누적식으로 적어가며 암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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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운이는 학습전략 세우기에 앞서 기본기부터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기란 철저한 예·복습을 말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잘하는 과목과 그렇지 않은 과목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고, 이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파악해 공부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늘 깔끔하게 정돈된 상운이 책상.

 상운이는 “예습할 땐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려야 한다”며 “전체 내용을 한번 훑어본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공부한 후 특히 이해가 안 가는 단원은 수업시간에 다시 꼼꼼히 공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복습 요령도 얘기했다. “매일 단 30분이라도 그날 수업했던 내용을 꼭 다시 짚어봐야 한다”며 “전교 1등의 비결은 효과적인 시간관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기본을 갖췄다고 생각되면 그때 공부전략을 짠다. 여기서 중요한 게 문제집 고르는 습관이다. 누가 골라주거나 남이 좋다는 문제집을 따라 사는 대신 자신의 평소 공부습관에 맞는 문제집을 골라야 공부 효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상운이는 사실 전에는 과목당 7~8종이나 무작위로 구입해 닥치는 대로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목당 2~3종으로 확 줄었다.

 “문제집 고르는 것도 요령이 필요해요. 예컨대 기초 개념을 상세하게 정리한 문제집은 방학 때 예습한다는 생각으로 풀어야 해요. 응용·심화문제가 주로 나온 문제집은 수업시간에 교과서와 병행해 풀어보는 게 좋고요. 그러다 보면 원리부터 응용까지 전반적인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상운이가 꼽는 두 번째로 중요한 공부전략은 답안지 멀리하기다. 중학교 때 상운이는 수학 문제 풀 때 답안을 확인한 뒤 대충 넘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만약 모르는 문제와 맞닥뜨리면 그 문제를 푸는 원리와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대신 답안지를 통째로 외워 버렸다. 물론 이런 방식이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지만 새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여지없이 막혔다. 상운이는 “문제 정답을 맞추는 것보다는 실전에서의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나가는 훈련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이때부터 공책에 문제풀이 과정을 꼼꼼히 적는 습관을 길렀다. 아무리 사소한 공식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하다보니 실전에서의 실수도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답안지에 나온 문제풀이에 의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만의 문제풀이 방식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삼각방정식을 풀 때 등식에 나온 Sin(사인)을 모조리 Cos(코사인)로 바꿔 풀어보는 식이다. 상운이는 “문제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면 풀이방법이 달라도 결국 정답에 도달한다”며 “실전에서 자신감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실 수학은 상운이가 자신있어 하는 과목이다. 그렇다면 이과 성향 강한 상운이가 가장 어려워하는 영어는 어떻게 공부할까. 매일 누적식으로 단어를 외운하고 한다.

 “평일에 영단어 100개를 암기해요. 다음날이면 전날 외웠던 단어 일부를 까먹을 수 있죠. 하지만 하루 10분이라도 시간을 내 전날 외웠던 영단어를 다시 훑으면 암기 효과가 크게 올라가요. 또 주말에는 평일 닷새 동안 외운 단어를 몰아서 복습하고요.”

 우등생에게 공부 비결을 물으면 늘 ‘수업에 충실한다’는 틀에 박힌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상운이는 오히려 “학원과 과외를 무조건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또 “자기 자신에게 맞는 학원강사를 발견하면 꾸준히 그 사람 강의를 듣는 게 좋은 학습전략”이라고도 했다. 무조건 학원이나 강사 명성에 취해 듣는 대신 자신의 성향과 맞는 사교육의 도움을 적절히 받으라는 조언이다.

 상운이는 “중학교 때 다닌 학원의 강사 덕분에 수학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며 “고교 입학 후 성적이 크게 올랐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실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아직 그 강사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 명성을 맹신하지 말고 강사와 자신의 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라”고 알려줬다.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축구도 학습에 도움을 준다. 공부에 필요한 집중력과 체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 축구부에서 왼쪽 윙백(수비)을 주로 맡는 상운이는 “상대팀 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움직이기 위해선 평소 빈틈을 막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한다”며 “체력과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는 면에서 공부와 축구는 공통점이 많다”고 했다.

 상운이가 이렇게 성실한 공부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데는 집안 분위기도 한몫했다. 상운이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데다 아버지가 목사라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부모님과 네 남매가 모두 모여 가정예배를 본다. 단순한 종교적 모임만은 아니다. 이때 나누는 가족 간 대화를 통해 평소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다잡을 수 있어 학습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 정영희(44·회사원)씨는 “가족모임을 꾸준히 하다보니 아이가 절제력과 인내력을 키우더라”며 “한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공부하는 학습 태도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글=조진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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