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왕 소방관 … 15년간 4000명은 구했을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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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다리 난간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지난 1일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성수대교 북단에서 40대 남성이 자살을 하려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광진소방서 119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해보니 난간에 한 남성이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구조대장 이용진(39·사진) 소방장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이 소방장은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음주운전을 하다 성수대교 초입에서 교통사고를 낸 남성은 “죄책감에 자살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이 소방장은 자신의 실수담을 들려주며 그를 다독였다. 그 순간 팔에 힘이 빠진 남성이 난간을 놓쳐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이 소방장은 재빠르게 팔을 뻗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구조왕’의 내공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올해로 15년째 소방관으로 활약 중인 이 소방장은 ‘베테랑’ 구조대원이다. 그는 “지금까지 현장에서 구한 사람만 해도 어림잡아 4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강동·도봉·서초소방서 등 서울 시내 소방서 구조대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그는 서울소방학교에서 신임 소방사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는 중앙119구조본부에서 대형 재난현장을 누비며 구조활동을 펼쳤다.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등 국내는 물론 인도네시아, 아이티 대지진 등 해외 현장 역시 그의 활동 무대였다.

 지난 7일 이 소방장을 만나 가장 잊기 힘든 사고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1999년 구조대에 갓 배치됐을 때 나갔던 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던 어린 남매가 강에 빠진 사고였어요. 아이들을 물 밖으로 구조하고 보니 5살짜리 남동생이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어요. 자책감에 며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이후 참혹한 현장을 수없이 다녔지만 15년 전 그 순간이 여전히 제일 잊기 힘든 순간입니다.”

 그에게 조심스레 국민안전처 신설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 국가 재난을 이끌 수장만큼은 꼭 현장 경험이 있는 분이 왔으면 합니다. ”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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