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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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TV극에 나오는「폐리·메이슨」은 명 변호사의 대명사다. 그는 사건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쟁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변론기술에다 고고한 덕성과 인품까지 갖춘 완벽한 정의의 대변인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재야에도 그 못지 않은 명 변호사들이 있다.
박 모 변호사는 수백 페이지의 수사기록을 완전히 복사, 사건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뒤 철저한 사전준비 끝에 공판에 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에게는 「적당히」라는 것이 없다는 게 후배 법조인들의 평이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투철해 판사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다.
문 모 변호사는 피고인과 증인에게 날카로운 질문으로 사건을 파헤쳐 가는 교호(교호)신문기술이 탁월한 변호사로 유명하다.
이 모 변호사는 사건을 완전히 분해하여 쟁점만을 추출, 재조립하는 특기를 지녔다. 피고인과 그 가족·친지를 많이 만나 증인을 확보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발로 뛰는 성실한 변호사로 통한다.
사명의식이 투철한 이런 변호사들이 있는가 하면 애석하게도 이와 상반되는 변호사 또한 적지 않는 것 같다.
11일자 중앙일보 사회면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색다른 판결기사를 보도했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태만과 불성실한 소송수행으로 패소, 위임사무처리 의무위반으로 인한 수임료 반환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판결까지 받았다는 뉴스다. 당연한 판결이다. 이 당연한 판결기사를 접한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법률무지의 당사자가 변호사를 찾을 때의 심정이란 사경 (사경) 의 환자를 들쳐업고 의사에게 살려달라며 매달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웬만한 사람이면 한번쯤 경험한 일이다.
기사를 읽고 흥분한 독자는『돈벌이에 눈먼 지식상인을 좀더 혼낼 수 없느냐』며 전화를 걸어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호사 상도 변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명 변호사는 옛날의 지사(지사)형이나 반 독재투쟁의 투사나 자선가도 아닌 것 같다. 성실한 법정활동을 통해 사건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한 대변하고 응분의 보상을 받는 변호사를 원한다.
중학교 3년 중퇴의 소송의뢰인과 싸워 패소하는 떳떳지 못한 변호사가 있기에 아직도 『변호사를 산다』는 그릇된 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재판은 소송당사자를 여위게 하고 변호사를 살찌게 한다』는 법언도 있다.
그러나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 불의와 부정의 배격, 명예와 품위의 보전이란 윤리강령에 충실한 변호사들도 많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믿고 있다.
이번 사건보도가 재야의 현주소를 재조명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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