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27억 포기」싸고 이견 예금주|김상기씨 사건「은행 공신력」문제 새삼 부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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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자살한 전 조흥은행 명동지점차장 김상기씨(39)의 86억 원 유용사건이 표면화되면서 예금했던 32억 원 가운데 27억 원을 못 받게 된 예금주가『은행의 강압에 못 이겨 포기 서를 썼다』고 주장하고 나서 은행이 제일 의로 삼아야 할 공신력문제가 이사건의 또 다른 논란 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은행측은 예금포기를 강권하는 과정에서 예금주의 약점을 이용, 예금주에게 국세청과 수사기관에 알려 진상을 캐겠다고 간접적으로 압력을 넣어 거액을 포기토록 한 것으로 알려져「예금주보호」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조흥은행이 김씨가 숨진 뒤 통장을 들고 나타나는 예금주들에게 모두 원금과 이자를 지급했으나 유독 김 모씨(58·서울 창천동)소유로 된 31억8천5백 만원은『문제가 있다』고 지급을 거절함으로써 비롯됐다.
예금주 금씨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된 통장 6개를 갖고 있었는데 이들 통장에 기재된 금액이 31억8천5백 만원이었다.
예금주 김씨는 지난 4월말 대리인을 시켜 거액이 예금된 통장을 개봉동·명동지점 등에 갖고 가 인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흥은행은『원장에 예금액이 기재되지 않아 돈을 내 줄 수 없다』며 진짜예금주 김씨를 찾았다.
조흥은행은 예금주 김씨를 만나 타협 끝에 4억8천2백 만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27억3백 만 원은 김씨로부터 포기각서를 받고 지급을 하지 않았다.
조흥은행은『우리은행이 발급한 통장에 기재된 예금이라 하더라도 그 통장 자체가 허위로 기재된 것이라면 돈올 지급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급거절이유를 밝혔다. 김씨가 이를 항의하자 조흥은행 측은▲김씨와 김상기씨의 관계가 단순한 행원과 고객의 관계로 보기 어렵고▲김씨가 예금해 받은 이자는 은행이자 이상인 월 2·5푼의 높은 이자율이라는 점▲둘 사이의 관계는 특수관계로서 통장기재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이번의 예금지급거부가 은행의 공신력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에 대해▲5년 전 김상기씨가 부탁해 예금했을 뿐이고▲사채이자를 받았다 하더라도 돈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니고 조흥은행 발행 통장으로 받았으며▲고객이 통장과 원장의 기재사실 일치여부까지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느냐며 은행측의 처사에 맞섰다.
김씨가 계속 현금지급을 요구하자 은행측은 진상을 알기 위해 수사기관 등에 수사를 의뢰, 진실을 밝히겠다고 해 김씨는 어쩔 수 없이 포기각서를 썼다는 것이다.
김씨는 원장에 기재되지 않은 통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축재과정의 약점 때문에 포기각서를 썼지만『은행이 고객을 이런 식으로 협박, 돈을 주지 않으면 누가 은행을 믿고 예금하겠느냐』고 말했다.
김씨는『거래관계로 5년 전부터 김상기씨와 친해져 통장만 믿었으며 돈이 많다는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상철 변호사는▲김씨의 통장예금액이 원장에 기재돼 있지 않더라도 은행의 담당차장이 통장을 만들었다면 예금청구가 가능하며▲행원인 김상기씨의 불법행위는 고용주인 은행측에 책임이 있으며▲과거에도 각종 창구사고의 경우 은행이 보상을 한 실례가 많다고 법률적인 소신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김씨가 김상기씨와 너무 가까와 원장에 기재되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면 정상적인 거래행위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며 김상기씨의 불법행위를 김씨가 알고 있었다면 김씨 측에도 잘못이 있으나 김상기씨가 숨졌기 때문에 김씨가 김상기씨의 비위를 알았다는 사실은 은행이 입증하기는 곤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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