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생산품 한국산 인정 … 중국 수출 길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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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는 칠레·페루·한국뿐이다. 세계 국가 중 한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의 면적은 73.2%로 이 역시 칠레(85.1%), 페루(78%)에 이어 세계 3위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글로벌 FTA 허브가 될 수 있다. 한·미, 한·EU FTA 효과를 보려는 중국 기업들의 대한국 투자를 기대할 수도 있다. 역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미국과 EU 기업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일 수 있다. 한국은 중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선진국 수준의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중 FTA는 과거 한·미, 한·EU FTA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타결됐다. 실제로 정부가 밝힌 한·중 FTA의 중국 측 관세철폐 비율은 품목 수 기준 91%로 한·미나 한·EU FTA(각각 99%)에 미치지 못한다. 박명섭 성균관대 무역학과 교수는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중국·EU와 동시에 FTA를 체결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경제 활성화할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중 FTA를 서둘러 타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한·중 FTA를 통한 장기적 관세 절감 효과는 한·미, 한·EU FTA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중 FTA를 통한 자유화가 모두 달성되는 시점에 한국 기업이 중국에 수출할 때 절감할 수 있는 관세 규모는 연간 최대 54억4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한·미 FTA에 의한 관세 절감 효과(9억3000만 달러)의 5.8배, 한·EU FTA(13억8000만 달러)의 3.9배에 해당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왼쪽 셋째)이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FTA 협상 종료에 관한 의사록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이를 지켜보며 박수 치고 있다. [베이징=박종근 기자]

 다른 FTA보다 진전된 부분도 있다.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았다. 한·미, 한·EU FTA는 별도로 만들어진 한반도역외가공위원회에서 이를 정하도록 했지만 지금까지 한국산으로 인정받은 개성공단 제품은 없다.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FTA 등은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개성공단 제품을 100~200여 개 정도 목록으로 만들어 협정문에 반영했다. 목록에 있으면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새로 생산되는 제품은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중 FTA는 다르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우태희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한·중 FTA가 발효되는 즉시 개성공단 제품은 별도 위원회 논의나 품목 나열 없이 특혜관세를 받고 중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중국 측과 추가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에서 쌀과 주요 농수축산물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긴 했지만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제품은 국내 시장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비준 과정에서 농촌 출신 의원이나 농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2007년 4월 협상이 타결된 한·미 FTA는 국내 농가와 미국 자동차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5년 후에나 발효됐다. 특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과 이로 인한 광우병 시위 파동으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국내의 반발을 막기 위해선 한·중 FTA로 피해를 보는 분야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 제조업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앞으로 중국의 저가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무역구제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체결한 FTA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과제다. 심상렬 광운대 동북아통상학과 교수는 “여러 국가와 FTA를 체결했지만 복잡한 절차와 규정으로 FTA 활용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뜻하는 ‘스파게티 효과’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원배 기자, 박진석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스파게티 효과(Spaghetti Bowl Effect)=여러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뒤 스파게티 면발처럼 각국의 원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 등이 뒤엉켜 혼란을 부른다는 뜻으로 스파게티(볼) 효과 또는 누들 효과(Noodle Bowl Effect)라고도 부른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뒤 미국 포드가 원산지 서류를 잘못 작성해 벌금 4100만 달러를 낸 것이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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