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가정의 달] '어른들은 몰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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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생이'와 '날라리' 그리고 '딱중간'. 한때 유행했던 청소년 분류법이다. 범생이는 성적과 입시로 존재를 확인 받는 상위 5%의 체제적응형 학생이다.

날라리는 개인기를 믿고 연예계를 지망하거나 일찍부터 유흥 오락산업에 편입된 시장적응형 미성년자를 뜻한다. 반면 압도적 다수인 딱중간은 범생이도 날라리도 아닌데다 자신을 증명할 수단도 딱히 없어 뵈는 '그저그런 십대'의 이름이다.

딱중간처럼 눈에 잘 안 띄는 아이들은 곧잘 이런 핀잔을 듣는다. "공부를 할래 말래?", "커서 뭘 먹고 살지.",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니?" 등등. 이 책은 그렇게 어른들 눈높이에 딱 맞지도 않고 눈 밖에 날 만큼 막 나가지도 않는 13~17세 또래 아이들의 37가지 이야기를 담아 보이고 있다.

그 점에서 지금 10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학부모들이 '전혀 다르게 성장하는'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집어야 할 이 책의 1부 '꿈을 어떻게 참아?'부터 보자. 아이들이 느끼는 오늘의 행복과 부모가 걱정하는 내일의 불행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결정적 장면 릴레이'다.

틈만 나면 부모들 몰래 압구정 굴다리에서 그래피티(낙서그림)를 하는 민영, 버스에 관한 잡동사니를 수집.기록하느라 버스 요금만 한달에 30만원을 써본 선구, 가족 몰래 가수 오디션을 보고 떨어져서 혼자 진로를 고민하는 윤지….

문제는 '꼭 해야 하는 공부'를 앞세우는 부모의 눈에 아이들의 이런 행동이 쓸데없어 보일 때 시작된다. 도망가는 아이와 붙잡는 부모, 타협과 공존의 길은 없을까?

2부 '사랑,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인스턴트 연애에 골몰하는 아이와 불안에 떠는 부모의 '밀고 당기는 게임 열전'이다. 학원에서 만난 남자애 때문에 삼각관계에 빠진 단짝 친구 유나와 나영, 참고서 핑계를 대고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자마자 튀어나가는 승환, 미래의 여자친구를 위해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승민….

이성 앞에서 달뜬 이 아이들의 태연한 짝짓기에 부모는 '나쁜 짓'을 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비밀이 많아지는 아이와 의심만 커지는 부모, 속을 터놓고 서로를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소득차.세대차.성차.개인차 때문에 생기는 가족의 천태만상을 아이의 시각에서 소개하는 3부와 4부까지 가볍게 넘어가는 이 책의 또다른 소득은 '너희들을 정말 몰랐구나' 하면서 다가오는 부모의 성찰과 변화를 맛보는 감동이다. 부모들이 개성이 제각각인 아이들에게 일률적인 논리와 감성으로 대할 땐 잠시 몸서리를 치게 되지만, 끝내는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 편이 되어주는 부모를 보며 답답한 숨을 돌리게 된다.

기말고사 하루 전날 딸아이의 첫사랑을 위해 밤새 종이 장미를 접어주는 엄마, 중3 겨울방학 때 아들을 반 강제로 무전 여행을 보내놓고 돌아오는 날 동네 입구에 환영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아빠, 잔소리 대신 딸과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한 엄마. 이런 어른들만 있다면 딱중간 청소년도 더는 없을 것 같다. '특별한' 자녀 앞에서 두려움에 빠진 부모들에게 이 책은 '아이를 믿으라'고 권한다. 그것 말고 정말 다른 대안이 있을까?

김종휘<대중문화평론가>

<사진설명>
"엄마, 아빠 제 꿈을 들어 보실래요?"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어른들은 몰라요'는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 과정을 다큐멘터리식으로 그리고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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