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물만 켠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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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미국 항공 물류업체 페덱스(FedEx)의 아시아.태평양 중심기지(허브)를 인천공항에 유치한다는 한국 정부의 계획이 좌절됐다.

페덱스는 13일(현지시간) 현재 필리핀 수빅만에 두고 있는 아.태 허브를 2008년까지 중국 광저우(廣州)로 이전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재정경제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 1월 페덱스가 수빅만~인천공항 간 화물기 운항을 주 20회로 증편하자 "페덱스가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로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페덱스 측에서 허브 이전을 공식 발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과잉 홍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재경부는 다음날 다시 자료를 내고 이를 반박했다. "페덱스가 인천공항을 동북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허브 중의 하나로 운영한다는 것을 회사 측에 확인했다"며 인천공항의 동북아 허브화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정부의 '희망사항'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페덱스는 인천공항의 허브화 추진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4월 방한한 데이비드 커닝험 페덱스 아태지역 사장은 "동북아 허브 국가가 되겠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지만 이 지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효율성 면에서 다른 곳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었다. 14일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페덱스는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광저우의 바이윈(白雲) 국제공항에 전체면적 8만2000㎡ 규모의 물류시설을 건설해 2008년 12월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장 후 12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주당 228편의 화물기를 운항할 계획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페덱스가 중국에 초대형 물류기지를 신설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 간의 화물 물동량이 20년간 매년 9.6%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데 따른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페덱스 코리아 관계자는 "광저우로 아시아 허브를 옮기기로 한 것은 중국의 화물 수요가 가장 커지고 있는데다 공항 이용과 통관 절차가 편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 관계자는 "페덱스의 아.태 허브를 인천공항으로 유치하길 희망했지만 해당 업체가 시장 상황을 판단해 중국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천공항은 화물운송 규모가 세계 3위인 만큼 잠재력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허브 기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며 "DHL 등 다른 물류업체의 물류 기지 증설 계획 등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혁주.김원배 기자

◆ 허브란=바퀴살이 달린 축과 같이 여러 지역과 연결돼 여객.화물 수송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곳. 예컨대 한국.일본 등 아시아에서 나오는 화물을 필리핀에서 모아 미국.유럽 등으로 발송한다면 필리핀이 물류 허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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