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관계개선 속도 내면 … 한국 외톨이 될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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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APEC 멀었던 중·일 정상 지난해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뒷줄 왼쪽 끝)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오른쪽 끝)이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와 센카쿠 열도 등으로 인한 중·일의 냉랭한 관계를 반영하듯 두 정상의 자리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중앙포토]

한국 외교가 중·일 정상회담 성사라는 예상치 못한 ‘한 방’을 맞았다. 원칙만 강조하며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해 온 한국의 외교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모양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봤다.

외교부 관계자는 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중·일 정상회담 추진 경과와 양국 사이의 밀고 당기기 상황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최국인 중국이 손님 대접 차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간단하게 만나 인사를 나눌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며 “정상회담 합의는 다소 예상 밖”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가 소식통은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에 중국이 내건 조건은 첫째로 일본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분쟁지역으로 선언하고, 둘째로 아베 총리가 다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첫째 조건에 난색을 표하던 일본이 공식 선언을 못하는 대신 그렇게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는데 중국이 이를 양해했다”고 말했다. 또 “아베 총리가 지난달 가을 제사 때 야스쿠니 신사에 가지 않고 공물만 보낸 것을 중국은 둘째 조건에 일본이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를 경원시해 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일 정상회담을 받아들임에 따라 한·중·일 외교지형엔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일 관계가 갈등 트랙을 벗고 협상 트랙으로 들어설 경우 한국 외교가 ‘외톨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중·일 정상회담의 결과부터 보고 득실을 판단하자는 입장이다. 또 중·일 정상회담보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이 먼저 열릴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날 중·일 정상회담 발표 전 베이징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먼저 열린 데서 보듯 중국이 한국을 배려할 것이란 점에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중·일 정상회담의 성사 배경과 의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도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일단은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중·일 회담의 결과를 보고 난 뒤 대중·대일 전략에 변화를 줘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아산정책연구원 김한권 지역연구센터장은 “센카쿠 문제 등에서 미·일 동맹에 맞서 갈등을 빚어 온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라며 “이를 중·일 관계 전반이 갑자기 좋아진다는 맥락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기회에 정부가 좀 더 유연한 외교로 기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 개선 흐름이 빨라지고 실용외교 노선을 가속화할 수 있는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려대 정책대학원 김승채(정치학) 겸임교수는 “중국이 주창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등을 한국이 따라오지 않자 중국이 ‘이런 식이면 일본과 함께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수교 50주년을 맞는 내년 초를 전후로 한·일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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