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부동산 대책, 어느 쪽이 최선일까

'집 많이 가진 자'를 보는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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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부는 다주택 보유자의 투기 때문에 강남 등지의 집값이 급등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위원회가 세무조사와 대출제한에 나서는 것도 집값을 잡는 데는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국세청은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 9개 아파트단지의 최근 5년간 거래 전체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거래 주택의 58.8%를 이미 2주택 이상 보유한 가구가 취득했다고 밝혔다. 또 행정자치부는 2002년 6월 기준으로 서울 강남(서초.강남.송파구)의 2가구 이상 보유 세대가 전체 세대의 20%에 불과했으나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전체의 48%(20만 가구)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강남 주변에 신도시를 세우더라도 결국 투기꾼의 사냥감으로 전락해 순공급을 늘리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정부를 포함한 수요억제론의 관점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공급 대책만 하는 것은 투기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장주의자들은 주택에 대한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본다.

실수요와 가수요의 경계도 구분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른바 투기목적의 가수요라는 것도 실수요가 뒷받침될 때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실수요가 사라지면 가수요에 의한 거품 역시 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급확대론자들은 공급을 확 늘려 실수요를 충족시키고, 그에 따라 집값이 더 뛸 것이라는 기대감을 낮추면 투기적 수요도 함께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주의자들은 특히 집값 상승이 예견되는 시장에서 주택을 사들인 사람들을 무작정 투기자로 몰아 범법자 취급을 하는 것은 온갖 규제로 공급을 억눌러 집값 급등을 초래한 정부가 시장 참여자에게 떠넘기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또 정부 통계에서 다주택자로 분류된 인원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임대사업자이고,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사둔 사람의 경우도 광의의 임대사업자에 포함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는 이들이 주택의 보유와 처분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정당하게 세금을 물리면 그만이지 투기 목적이냐 아니냐, 실수요냐 가수요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시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개별거래의 성격을 일일이 가릴 능력도,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기관의 대출을 재원으로 주택투자에 나서는 경우는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위험을 줄이고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점은 시장주의자들도 인정한다.

허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