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인권도 복제해 줘" 그들이 울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상품이 도망간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22일 전 세계 동시 개봉하는 영화 '아일랜드'(사진)는 복제인간이 상품으로 '매매'되고 '처분'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종말을 맞은 지구상에서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선택된 생존자. 자신들은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렇게 세뇌된 것일 뿐이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꿈의 낙원인 '아일랜드'로 떠나는 행운에 당첨되길 간절히 바란다. 실은 그것이 비참한 최후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인간 복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영화계에서는 복제인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발 빠르게 포착해오곤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멀티플리시티''6번째 날'등은 모두 복제인간을 비틀린 시각으로만 다루고 있다. 모체의 일을 대신하거나 심할 경우 '아일랜드'처럼 대체 장기의 공급원, 또는 대리모 역할에 지나지 않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극단적인 예일 뿐이라고 생각해 오다가 몇 년 전 충격적인 경험을 한 바 있다.

황우석 박사가 생물 복제를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청중 중에 누구나 알 만한 대중 과학계의 유명인사 한 분이 왔다. 그분은 강연이 끝난 뒤에 사석에서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를테면 대통령같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미리 복제인간을 만들어 격리해 두었다가 유사시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 복제와 관련된 문제에서 일반인이 갖는 잘못된 선입관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생물 복제를 무슨 예술작품의 모사품 만드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생물 복제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 깃든 존재를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우리의 복제 기술이 담당하는 부분은 오로지 생물의 '몸체'일 뿐이며, 생명은 우리가 관여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서 복제기술로 태어났든 아니든 간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존엄성을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시험관 아기들의 인권을 차별대우한 적이 있었던가? 마찬가지로 복제인간 역시 태어나는 과정이 조금 다를 뿐, 하나의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복제인간과 관련된 또 하나의 잘못된 인식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 때문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복제인간이 모체가 되는 인간과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멀티플리시티'처럼 무슨 틀에서 찍어내듯이 속성으로 배양시킨다든지, '6번째 날'에서와 같이 기억까지 똑같이 주입시키는 등의 장면은 실제 과학적 사실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복제인간은 보통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성(대리모)의 태내에 배아를 착상시켜 정상적인 임신 기간을 모두 채운 다음에 갓난아기로 출산하게 된다. 즉 모체와는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쌍둥이인 셈이다. 이런 과정으로는 영화에서처럼 모체의 외모와 체격, 기억 등이 똑같은 복제인간을 금세 탄생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화에서 그나마 복제인간에 대해 인간적인 시선을 준 경우라면 '에일리언4'의 여주인공이 자신의 복제인간들을 보고 경악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들은 기형으로 태어난 데다 연구 목적으로 실험실에 갇힌 채 고통스러워 한다. 주인공은 그 간절한 눈빛을 읽고는 눈물을 삼키며 그들의 숨을 끊어 준다.

대중 파급력이 큰 영상매체에서 복제인간을 계속 왜곡하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다. '자유분방한 과학적 상상력'에 절제가 필요한 지점이라고나 할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헛갈리는 용어들

1970년대 초 개구리 복제 실험이 성공하자 미국에서 곧바로 '복제인간(The Clones)'이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다. 정부가 뛰어난 과학자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 버리고 그들의 복제인간을 대신 만들어 통제하려는 음모를 다룬 작품이다. 70년대 후반엔 히틀러의 복제인간이 탄생한다는 설정을 다룬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란 영화도 나왔다.

그런데 실제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를 복제인간 테마와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이나 행동이 인간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한 로봇을 흔히 안드로이드라고 부르는데, 이런 설정을 다룬 영화는 1927년작인 고전 '메트로폴리스'부터 '블레이드 러너''A.I.'까지 무척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인조인간', 즉 로봇일 뿐이다.한편 '로보캅''공각기동대'처럼 인간의 신체와 로봇 몸체가 결합한 경우는 '사이보그'라고 부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