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풍향만 좇는 한심한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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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열린우리당의 주요 정책의 방향이 춤추고 있다. '부창부수(남편의 주장에 아내가 따르는 것)'가 아니라 청와대 주장에 당이 무조건 따라가는 '청창당수'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다. 얼마 전 여당이 "당정 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결국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나. 과반의석에서 불과 4석 모자란 원내 제1당의 줏대없는 행태는 정말 실망스럽다.

사례는 많다. 국방부 장관을 문책해야 한다는 당의 목소리는 대통령의 "국방개혁의 적임자"란 말 한마디에 쑥 들어갔다. 대통령이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시험 도입 방침을 '이 주일의 나쁜 기사'로 꼽자 당은 "서울대와 전면전을 해서라도 취소시키겠다"고 총대를 멨다. 대통령의 "연립정부 구성 검토"란 발언이 나와도 합당에 결사반대했던 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당내의 소위 '개혁파'나 '실용파'가 다르지 않다.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문제는 당의 정책이 오락가락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여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원가 공개를 입법화하려 하자 노 대통령이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고, 이것으로 논란이 끝나버렸다. 이번에 대통령이 "공개 못할 게 없다"고 말을 바꾸자 여당은 '적극 검토'로 U턴 했다. 당정회의 발표 자료엔 '재건축 규제 완화 검토'가 포함됐지만, 바로 다음날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가 전해지자 없던 일로 됐다. 대통령의 말에 줄서기에 바쁘다. 군사정권 시절의 '거수기 여당'과 다를 게 없다. 과거와 똑같은 행태를 하면서 입으로만 과거청산을 외친다.

대통령제 하에서 여당은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권과 정부의 방향성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도 있다. 그게 146석의 의석을 여당에 준 국민의 뜻이다. 이를 소홀히 하면서 야당과 언론 탓만 하고 있다면 여당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