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협공 받는 이창호 견딜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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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무적함대 이창호 9단이 어려운 시절에 양면에서 강적을 맞았다. KT배 왕위전에선 올 신예 중 최대어로 떠오른 '옥왕' 옥득진 2단이 날카로운 칼날을 겨누고 있고 전자랜드배 결승에선 천적 최철한 9단이 억센 힘으로 목줄을 조여온다.

최근 예상 외의 실족을 거듭하며 승률 60%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보이고 있는 이창호, 그러나 지난 10년간 태산과 같은 저력으로 신화를 창조해온 이창호가 양면의 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관심거리다.

◆ 왕위 10연패의 분수령, 8일의 도전기 3국= 5번기 중 두 판을 두어 1 대 1로 팽팽한 상황이다. 옥득진은 검증되지 않은 신예라는 딱지를 아직 떼지 못했지만 도전기 첫판에서 이창호를 밀어붙여 대마를 잡아버렸다. 창덕궁에서 벌어진 2국은 그러나 이창호의 완승.

8일 도전기의 분수령이라 할 3국이 한국기원에서 벌어진다. 9년 연속 왕위 타이틀을 지켜온 이창호 9단이 왕위전 39년 사상 초유의 10연패를 달성하려면 이 판을 꼭 승리해야 한다.

프로기사들의 전망은 6 대 4로 이창호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처음 도전기가 시작될 때는 "체급이 맞지 않다"며 이창호의 압도적 우세를 말하다가 6 대 4까지 접근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옥득진은 왕위전에서 승승장구하며 별명도 '옥동자'에서 '옥왕'으로 바뀌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연승행진 끝에 도전자까지 되었을 때 이창호와 대국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감격해 하던 마음 자세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1국에서 이긴 뒤 '이창호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2국에서 완패를 당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처음엔 져도 행복했기에 마음을 비운 채 판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나, 승리가 가능하다고 느껴지면서 행마가 무거워지고 말았다.

3국은 그 점에서 기술 이전에 정신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 불리는 고도의 부동심을 유지하느냐.

◆ 다시 만난 천적, 최철한 9단= 6일 밤 벌어진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결승 1국은 사투의 연속이었다. 이창호는 사람이 변한 듯 적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난전을 벌인 끝에 아슬아슬한 흑 반집승을 거뒀다. 3번기니까 우승의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이창호와 최철한의 과거 도전기 전적은 매우 충격적이다. '표'에서 보듯 2004년 국수전에선 2 대 3으로 패배해 타이틀을 넘겨줬고 같은 해 기성전에선 1 대 3으로 타이틀을 상실했다. 그리고 올해 이창호가 도전자로 나선 국수전 리턴 매치에선 0 대 3으로 무너졌다.

세 번의 도전기에서 이창호는 최철한에게 모두 졌고 전적은 3승9패로 크게 뒤진다. 이창호에게 최철한이 천적 중 천적임을 증명해준다.

이런 명백한 전적 때문에 국내 최대 기전인 전자랜드배 결승전은 처음엔 최철한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첫 판을 이창호 9단이 이긴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이창호의 설욕전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더구나 최철한 9단의 마음도 그리 편한 상태가 아니다. 연초 응씨배 결승전에서 중국의 창하오(常昊)에게 패배한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후지쓰배 결승에서 패배했기에 '독사' 최철한도 지금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태인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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