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태권도 3단 김지연 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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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민첩한 발놀림과 공격적인 파괴력, 동작 하나하나에 쏟는 뜨거운 긴장감은 전통무예에서 세계의 스포츠로 발전한 한국의 스포츠 태권도의 진면목이다.
윤기 흐르는 하얀 바탕에 새까만 깃이 어우러진 도복을 입고 깃털모양 가볍게 움직이는 질서정연한 경기장면. 간간이 흐르는 땀을 훔쳐내는 가냘픈 손길에서 정갈한 여성다움이 흠씬 전해진다.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무도의 세계에 뛰어든 선두주자격인 3단의 프로태권도선수 김지연 양(22). 김 양이 13년 동안 태권도에 쏟아온 집념은 생명에 대한 애착 그 자체였다.
『후천성 소아마비였어요. 갑자기 발병한 신경마비로 모두가 낙심하고 있는 경황 속에 운동이라도 차차 시켜보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어머님에게 마지막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그 일이 이미 저의 운명을 결정했고요.』그래서 김 양은 1년이면 누구나 쉽게 딸 수 있는 초단을 밤낮을 매달려가면서도 2년여의 세월이 걸렸다고 당사의 안타깝던 심정을 떠올린다.
다리의 근육도 서서히 풀리고 정상아의 모습으로 회복되어가면서 중학교 3학년 때 드디어 3단을 획득, 79년 서울서 개최된 프리월드게임 라이트급 국가대표선수로 출전하게 된 감격을 맞이했다.
『가족 모두가 그때처럼 흥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더구나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저의 뒷바라지를 도맡아왔던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저를 안고 눈물만 흘리셨거든요.』
남자선수도 KO시키는 위력을 가진 김 양의 돌려차기와 안정된 자세, 정확한 동작은 누구도 쉽게 넘보지 못하는 특기가 되었다.
그동안 그는 78년 주한외국인 태권도선수권대회, 세계 프리원드게임 79년 세계 친선게임(대만) 등 20여개의 경기에 참여하면서 늘 최고의 위치를 누려왔다. 『국가대표선수로서 나름대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프로생활을 하고싶어 프로데뷔를 결심했습니다.
프로경기인 만큼 태권도 팬들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우먼도 되고싶습니다.』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에 태권도처럼 효율적인 운동도 없을 거예요. 특히 어린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면 책임감도, 자립심도 저절로 생기거든요.』과거의 그의 모습처럼 허약한 어린이들에게 특히 태권도를 권장하고싶다는 그의 얘기다.
우리 나라 태권도인은 2백40만. 그 중 한국여성태권도연맹(회장 이학선) 에 가입된 여성회원은 2만여명. 1년에 5∼6회의 정기게임을 통해 실력을 배양하고 있다.
요즈음 그는 인천체전을 휴학하고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금파리에서 도장을 경영, 30여명의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평소의 꿈을 실현하고있다. 가끔 어렵고 힘든 일을 치러내야 할 때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쏟았던 지극한 정성을 되새기면서 참아낸다는 그는 아직도 소녀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수줍은 처녀의 모습 그대로다.
80년 인천 체고 졸업. 사업을 하는 김창결 씨(51)의 2남1녀 중 외동딸이다. <육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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