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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 없는 취재망… 독자 볼 낯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56명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경남 의령의 경찰관 총기난사사건을 명색이 뉴스를 다룬다는 신문사들조차 사건발생 7∼8시간이 지나도록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전날 밤 9시30분에 일어난 이 엄청난 사건을 다음날 아침 5,6시 방송뉴스를 듣고서야 알았으니 신문 기자들은 할말을 잊었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 등도 분초를 다투며 타전되고 있다. 그러나 좁은 땅덩어리 한 구석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10시간이 가깝도록 모르고 있었으니 수많은 독자들에게 뭐라고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당국은 80년 언론통폐합조치와 함께 각 신문사의 지방주재기자제도를 폐지시켰다. 지방취재의 손·발이 잘린 신문사들은 27일 아침 6시 이후에야 기자들을 비상 소집하랴, 현지 취재팀을 출장 보내랴, 뒤늦게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서울서 의령까지는 빨리 달려도 5∼6시간이 걸리는 거리. 아무리 서둘러도 석간신문 1판 마감인 상오 10시30분 전까지 출장 팀의 취재송고는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방주재기자제도가 폐지된 후 각 신문사의 뉴스는 연합통신이 공급하도록 제도화돼있지만 통신기사는 마감시간이 임박하도록 속시원하게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방송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현지 기관에도 시외전화를 걸어봤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각 신문사는 통신이 제구실을 못하는 한 지방뉴스에는 속수무책이다.
결국 감질나는 통신기사와 메모해둔 방송뉴스, TV화면을 간접 촬영한 사진 등으로 모자이크해서 만든 석간 1판의 누더기 지면은 가관이었다.
지각보도는 고사하고라도 앞뒤가 안맞는 기사, 생동감을 잃은 사진, 「전」씨가「정」씨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으로 뒤바뀌어 사방자 수조차 62명, 64명, 73명 등으로 엇갈리는 등 신문마다 구구 각색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신문이 거리에 몰골을 내밀자 신문사 편집국에는 아직도 언론의 내막을 잘 모르는 독자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당신들도 기자냐』 『사망자 수가 왜 신문마다 다르냐』 『당신네 회사엔 사진기자도 없느냐』 등등.
당연한 항의요, 불만의 표시였다. 신문은 뉴스를 신속, 정확하게 제동할 의무가 있고, 독자는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 그렇지 못할 때엔 그 신문은 이미 죽은 신문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세계 어느 곳에 이렇게 만들어져 나오는 신문이 또 있을까. 언제까지 이같은 반신불수의 신문을 만들어야 할까.
지방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김재봉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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