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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프간서 발 빼자…중국 1000조원 경협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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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동·서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래 몽골·영국·소련 등 세계 패권을 노린 수많은 강대국이 침략했지만 거의 엄청난 피해를 입은 채 물러났다. 그래서 ‘제국의 무덤’이란 별명이 붙었다. 2001년엔 미국이 탈레반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침공했지만 탈레반은 건재하고 미·영 연합군은 올 12월 아프간에서 철군한다.

 미국이 떠나는 자리를 중국이 채우고 있다. 과거의 제국들은 무력이란 ‘채찍’을 들었지만 중국은 경제 원조란 ‘당근’으로 접근한다.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선 ‘아프간에 관한 이스탄불 프로세스’ 외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아프간에 대한 확고한 지지는 말이 아닌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며 아프간 재건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의 자치를 강조하며 미국의 영향력 배제를, 경제 재건과 지원을 강조하며 중국의 강점인 원조 능력을 부각시켰다. 이스탄불 프로세스는 아프간과 중국·인도·러시아 등 주변 14개국이 아프간 문제 해결을 위해 2011년 결성한 국제회의다. 미국은 배제돼 있다.

 지난달 29일엔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을 방문한 아슈라프 가니 신임 아프간 대통령에게 향후 4년간 20억 위안(약 3400억원)을 지원키로 약속했다. 또 5년간 각 분야 아프간 전문 인력 3000명의 훈련도 지원키로 했다.

 아프간에 접근하는 중국의 목적은 다양하다. 아프간은 석유·천연가스를 비롯, 우라늄·석탄·크롬 등 최대 3조 달러(3200조원)로 추산되는 자원이 매장돼 있지만 소련 침공 후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중국은 구리광산 개발에 30억 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롯, 유전 등 모두 1조 달러 규모의 아프간 자원 개발권 확보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신장(新疆) 지역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움직임 차단을 위해서도 아프간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다. 양국은 76㎞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아프간의 탈레반과 위구르 근본주의 무슬림이 연계돼 있다고 중국 정부는 보고 있다.

 아프간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인다면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중국의 군사 동맹국인 파키스탄을 합쳐 육상 실크로드 경제권을 완성하게 된다. 시 주석이 지난해부터 주창해 온 ‘신 실크로드’의 마지막 퍼즐이 아프간인 셈이다.

 아프간 입장에선 재정·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 올해 초 아프간 정부 편성 예산이 25억 달러였는데 상반기 보유액은 고작 4억 달러였다. 세계은행은 향후 10년간 아프간 정부 운영과 인프라 유지를 위해 매년 7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올해 아프간 지원 예산으로 편성한 21억 달러가 하원에서 반 토막 날 정도로 미국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이런 아프간에게 중국은 매력적인 물주다. 9월 취임한 가니 대통령이 첫 해외 방문지로 날아간 곳도 베이징이었다. 무샤히드 후사인 파키스탄-중국연구소 소장는 “중국은 아프간에서 군사 작전을 펼친 적이 없고 투자도 많아 아프간인들에게 이미지가 좋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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