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통치' 푸틴, 교과서 시장 재편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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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 통치가 교과서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교과서 시장을 재편해 학생들의 사고까지 통제하려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러시아 교육과학부의 교과서 검정 강화를 전했다. 지난해 겨울 갑자기 달라진 기준으로 교과서 절반 이상의 승인이 거부되고, 출판사 3분의 2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됐다는 내용이다.

단 한 곳의 출판사만 무사했다. 유년 시절부터 푸틴과 유도를 함께 한 아르카디 로텐버그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프라스베셰니예 출판사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는 31억 달러(약 3조 3000억원)의 자산을 소유한 기업가로 미국과 유럽연합(EU) 제재대상에 포함된 인물이다.

NYT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친구에게 교과서 시장을 넘기기 위해 수년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실행했다. 소비에트 시절 프라스베셰니예는 유일한 교과서 출판사였다. 소비에트 붕괴 후 경쟁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교과서가 나왔지만, 여전히 30%의 점유율을 유지해 온 알짜 기업이다. 푸틴은 총리로 재직 중이던 2011년 이곳을 민영화했다. 푸틴은 권한을 이용해 경쟁을 제한하고 ‘올마 미디어그룹’이라는 소규모 출판사에 팔았다. 올마 미디어 그룹은 집권 여당인 러시아통합당 소속 상원의원이 공동 대표로 있는 곳이다.

이 회사는 프라스베셰니예를 조세회피처인 키프로스에 있는 한 기업에 되팔았다. NYT 는 인수 자금의 흐름으로 보아 로텐버그가 이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라고 보도했다.

검정 강화는 이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다. 출판사에 까다로운 조건과 서류를 요구하고, 이유 없이 승인을 거부했다. 전국 학생 70%가 사용하던 영어 교과서는 단순 서류 미비로 금지됐다. 백설공주 등 인기 만화 캐릭터를 사용한 수학 교과서는 “애국심을 고양시키지 못한다”며 탈락했다. 그 결과 학생 1400만 명이 사용하는 1억 8700만 달러(약 1996억 원) 규모의 교과서 시장 70%를 프라스베셰니예’가 차지하게 됐다.

교사와 학부모는 “구시대 교육으로 회귀하고 있다”며 원하는 교과서를 고르게 해달라고 서명운동 중이다. 이들이 더 우려하는 건 교과서가 충성·애국 교육에 이용되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러시아 의회에선 역사·문학·러시아어 과목의 통합 교과서 발행에 대한 법안이 발의됐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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