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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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에도 유행같은 것이 있다. 몇년전만해도 중화학건설을 역설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것 같더니 요즘은 물가안정론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당시엔 중화학의 열기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중화학을 서둘러 선진공업국으로 도약하자는데 왜 동참안하느냐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너도 나도 중화학에 달려들었고 스케일도 웅장하여 처음부터 동양최대가 출현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무모한 것이었지만 그땐 그런 의구심을 갖는 것조차 불경스러웠다.
중화학을 서두르면 불원간 이탈리아·프팡스쫌은 따라잡을수 있다고 기세가 등등했고 그서슬에 물가안정론은 숨을 죽여야했다.
오늘날 대합창처럼 번지는 물가안정론이 그때 가냘프게라도 나왔더라면 요즘의 우리경제가 이토록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도 물가안정론이 안나온 것은 아니나 워낙 중화학론이 노부처럼 거세었기 때문에 정책도 경제도 한쪽으로만 경사졌던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불황속에서도 78년에 무려 11·6%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하여 세계만방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안정기조는 뿌리째 흔들려 그후의 물가폭등과 오늘의 허약한 경제체질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죽은자식 나이세기」지만 물가안정론이 조금만 일찍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든다. 요즘은 물가안정론자가 주류지만 그땐 비주류였다. 경제의 주류와 비주류는 순환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주류는 너무 기세등등하고 비주류는 너무 숨을 죽이는 경향이있는것 같다.
때문에 경제의 진폭도 너무 심하다. 물가 3%론이 풍미했던 73년에 물가가 6·9%로 안정되는가 했더니 74년에 42%로 폭등하고 성장률도 78년의 11·6%, 79년 6·4%에서 80년엔 마이너스 6·2%로 급락한 것이 좋은예다.
경제는 조화가 중요하다.
한꺼번에 11· 6%나 되는 성장을 하여 경제를 흥청거리게 하는것보다 성장도 7∼8%선으로 낮추고 물가안정도 그선에서 하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다.
경제는 다 단계가 있는 것으로서 이빨을 악문다고 쾌도난마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착실히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률을 높이면 칭송도 받고 세상도 풍성거리기 때문에 그쪽으로 쑬리기 쉽다. 사회가 덜안정된 개발도상국일수록 특히 그렇다.
요즘 강조되고있는 물가안정론은 매우 인기없는 정책이다. 물가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아무래도 경기가 죽는다. 또 임금도 덜 올리고 배당도 줄여야하니 사람들이 덜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비인기정책이 계속 강행된다는 것은 대단한 소신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다행히 고통스턴 정책의 효험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금년 물가억제 목표는 초과달성될 전망이다.
물가안정론이 위세를 떨친다는 것은 개도국엔 특이한 현상이며 우리의 경제의식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것으로서 매우경하할일이다.
어차피 한쪽으로 기울바엔 중화학보다 안정론이 낫다. 그러나 한쪽으로 기우는 것보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낫다. 물가안정이 모든 정책의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성장도 소홀히 할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1년에 40만∼50만명이 새일자리를찾아 사회로 나오고 이들을 소화하려면 최소한 7∼8%의 지속성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년 성장률은 5%선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용문제를 생각할때 너무 낮은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은 한자리 숫자는 따 놓은 당상이고 잘하면 5∼6%선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성장이 너무 낮은 대신 물가는 너무 안정된 것이다. 물가는 안정될수록 좋은 것이지만 그반작용으로 성장이 너무 죽는데 문제가있다. 그런데도 아직 정책은 성장보다 물가안정쪽이다. 과거 과열경기와 악성인플레에 너무 혼이난 과잉방어심리도 없지않을 것이다.
모든것이 다 그렇지만 경제도 지나친것은 좋지못하다. 과유불급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최우석 <조즙도국장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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