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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사돈, 우리 친구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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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박묘순(오른쪽에서 둘째)씨가 운영하는 허브카페에서 박씨의 둘째 딸과 셋째 딸네의 사돈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함께 모여 수박을 들고 있다. 박씨를 중심으로 사돈의 사돈들끼리도 친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박종근 기자

3대 20가족이 어울려 지내는 집이 있다. 어버이날이면 함께 여행을 가고, 누구 생일이라도 되면 또 일사불란하게 모인다. 서너 식구도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요즘 참 희한한 집이다. 더 희한한 것은 그중에 할머니.할아버지가 여섯 분이나 된다는 점. 두 어른이 올해 칠순, 한 어른이 환갑이다. 사돈댁 세 집과 한 가족처럼 어울리는 박묘순(58.여)씨 댁 얘기다.

박씨네는 딸부잣집이다. 딸만 다섯이다. 1994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기 전까지는 일곱 식구였다. 이후 딸 셋이 출가했다. 그럼 지금은 세 식구만 남았을까? 딸들 시집 보내 놓으면 집안이 아주 휑하겠다고? 아니다. 무려 스무 식구로 늘었다. 딸 다섯, 사위 셋, 손자 여섯, 그리고 큰딸네 바깥 사돈이 돌아가셨으니 다섯 사돈이다.

사진 찍게 사돈들 다 모여보시랬더니 급한 일정에 큰 사돈댁이 못 왔다고 못내 아쉬워한다. 둘째 딸 동현이네, 셋째딸 세진이네가 모였다.

동현 할아버지 임학빈(69)씨와 세진 할아버지 김영호(60)씨. 각각 박묘순씨의 사돈이다. 이들은 사실 직접 어울릴 일은 없는 양반들이다. 그런데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묻는다. 얼마 전 어버이날 함께 충주댐으로 여행도 다녀온 사이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안면도에도 갔다.

사연인즉 이렇다. 박묘순씨 댁 스무 식구는 지난해부터 어버이날 함께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박씨를 중심으로 딸들과 사위가 모이는 일은 그전에도 많았다. 손자들 돌 같은 가족 행사에는 사돈들도 들러 함께 식사를 해 얼굴은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어버이날이면 딸들이 각각의 시댁 어른, 친정 어른과 함께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던 것을 함께 여행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은 박씨였다. 어르신들은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했지만 친하지도 않은데 되레 어색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미혼인 막내딸 윤선영(26)씨가 '오락부장' 역할을 맡는다. 어른들이 많이 보는 TV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 눈높이를 맞춰 '스피드 퀴즈' 같은 쉬운 게임을 준비한다.

"어머니 아버지 대하듯 편안하게 생각했지요. 그저 재밌게 호응해 주시고 저희들을 편안하게 대해 주시니 감사하죠."

선영씨는 오히려 사돈 어른들에게 감사한다. 둘째 사돈 임학빈(69)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달리 우리와 잘 어울려 주니 되레 고맙죠"라고 추어올린다.

평소 자주 술자리를 갖던 사위들도 각자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부모님들께 드리는 편지글을 낭독하거나, 간단한 마술을 배워와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각자의 부모님들은 출가한 자식들이 새로운 가족과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하긴 했지만 직접 어울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핵가족으로 자란 손자들이 노인들과 어울리는 경험도 귀한 것이었다. 사돈들은 이제 서로 친하다 못해 아직 생기지도 않은 예비사돈의 자격 조건에 훈수를 두기까지 한다.

"나중에 우리하고도 친구가 될 사람이니 연배도 좀 비슷하면 좋겠어."

선영씨는 "안 그래도 시집 가기 힘든데 사돈까지 신경 써야겠다"고 애교 섞인 푸념을 한다.

여세를 몰아 지난 어버이날에는 충주댐 부근 펜션을 빌려 하루 묵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대전에 있는 박묘순 씨 남편 묘소에 들렀다. 군생활 33년 끝에 남편이 돌연 암으로 돌아간 뒤로 딸들과 매달 가던 곳이었다. 딸들 출가 후에는 사위들도 참여했다. 사돈들까지 온 식구가 간 것은 처음이었다.

"딸들과 어머니, 여섯 여자가 둘러 앉아 기도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어요. 사돈 양반이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죠." 셋째 사돈 김영호(60)씨의 말이다.

"사돈지간에 가까워봐야 서운할 일, 실수할 일밖에 없다고 그저 거리를 두라고들 하던데…." 대뜸 질문을 던져봤다.

"자식 나눈 사이만큼 가까운 게 또 어디 있겠어요. 딸은 사돈에게 며느리로 드렸고, 사위는 제 아들로 주셨죠. 친한 친구 이상 아닌가요?"

박씨 말에 사돈들도 연신 고개를 주억거린다.

의정부=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엄마~ 올케 어머니~ 손 좀 그만 놓으시죠"

얼마 전 친정 어머니와 올케의 어머니를 모시고 식품회사 견학을 다녀왔다. 두 분이 어찌나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지 보기가 참 좋았다. 한때는 친정 오빠의 생일이 다가오면 우리 어머니는 하루 전날 다녀가시고, 올케의 어머니는 당일 찾아오시곤 했다. 그러다 두 분이 같은 날 오셔서 함께 식사하시게 된 적이 있었다. 사돈 관계를 의식해 어려워하실 것 같던 분들이 의외로 스스럼없이 대화하셨다. 그 뒤로 친정 오빠네는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두 분을 아예 함께 모시고 있다. 오는 10월엔 양쪽 부모님들을 모두 모시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요즘 주위에서 결혼한 자식을 연결고리로 해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는 사돈들을 자주 본다. 예컨대 사위의 생일엔 딸 쪽 부모가 아들 쪽 부모를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고, 며느리의 생일엔 거꾸로 대접하기도 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엔 양쪽 사돈이 아이를 번갈아 돌봐주기도 한다.

양가의 사돈뿐 아니라 사돈의 사돈까지 어울리는 가족들도 늘고 있다. 대개 아들 쪽 부모가 먼저 모임을 주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 마음이 맞으면 사돈의 사돈으로 친교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이제 사돈은 더 이상 어려운 사이가 아니다. 자식을 나눈 친구이자 동반자다.

성경애(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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