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우리 삶의 내비게이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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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32면

저자: 오영욱 출판사: 페이퍼스토리 가격: 2만5000원

요즘은 책도 썸을 타는 것일까. 페이지를 넘기는 형태는 책인 듯 한데 들춰 보면 지도 뭉치다. 그런데다 내용은 잠언 문구들로 가득하다. 철학서라 해야할지 문학에세이라 해야할지 어정쩡하다.

『인생의 지도』

이 요상한 ‘출판물’을 낸 자는 ‘오기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오영욱씨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나한테 미안해서 비행기를 탔다』등 워낙 여행 에세이를 많이 펴낸지라 어느 기사에선 ‘여행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 그인데, 이번엔 한걸음을 훌쩍 앞으로 내딛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이정표가 될 ‘지도’를 만든 것이다. 가로 2.9m, 세로 2.19m짜리 지도를 그리는데만 6개월을 매달렸다고 한다.

하여 이 책의 독법은 좀 남다르다. 일단 매 왼쪽 페이지에는 우리가 살며 마주할 수밖에 없는 희로애락의 관문들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탄생을 시작으로 후회·증오·지혜 ·성찰 같은 단어가 모두 108개다. 그리고 그 키워드는 저자의 시각으로 새롭게 풀이된다. 가령 ‘신뢰의 기술은 가급적 말을 덜 하고 많이 듣는 것’이라거나 ‘내 삶만이 내 신념을 증명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렇다고 다 근엄한 가르침만도 아니다. ‘거짓말은 기왕이면 들키지 않도록 치밀하게 하는 것’이고 ‘남녀관계는 이해가 아닌 암기로 형성되는 것’이란다. ‘경험’에 대한 그의 사유도 이러하다. “’내가 많이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보통 일은 그들에 의해 망쳐진다.”

그저 키워드만 넘겨 봐도 좋겠지만 원래 목적은 지도를 따라가는 여행 아닌가. 오른쪽 페이지를 보자. 여기엔 키워드와 짝맞춘 지도가 등장한다. 저자가 만든 가상의 대륙 ‘니히르반(Nihirbahn·Nihilism+Nirbana+Bahn)’의 일부다. 키워드 ‘경험’을 예로 들자면 지도 속에는 ‘여섯 가지 맛이 나는 호수’가 펼쳐지고 ‘직관의 강물’이 흐른다.

독자는 선택은 이제부터다. 지도에 나온 ‘경험의 삼거리’라는 갈림길에서 ‘법’·’희망’·’버릇’ 중 하나의 길을 택할 차례다.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의 의미가 다음 행로를 정하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택할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음 키워드를 찾아 책을 뒤적이다 보면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된다. “선택을 위한 실마리나 도움은 거의 없다. 지도를 보며, 방향 감각을 희미하게 간직한 채 우연들이 난무하는 길을 무작정 떠나보는 것이다. (중략) 여러 페이지를 거쳐가며 삶의 인자들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전부다.”

책 중간 중간엔 저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종착지-예술·종교·사랑·지혜·영혼-가 있다. 하지만 거기 도달한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목적지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처음에 가지 않은 길을 다시 돌아가 볼 여지도 충분하다. 어찌 됐든 중요한 건 마지막으로 얻게 되는 경로가 ‘마이웨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름길도 정답도 없다. 그게 우리의 인생이니 말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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