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에볼라와 정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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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호 31면

에볼라 바이러스가 미국 정계를 덮쳤다. 4일 실시되는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은 “에볼라가 재정적자와 오바마 케어 등 기존 모든 이슈를 압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야당인 공화당은 중간선거 유세에서 에볼라 공세를 적극 펼치고 있다. “연방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미국을 에볼라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주장이다. 이미 하원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상원마저 석권하겠다는 태세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공중보건 위기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은 온통 에볼라에 쏠린 상황이다.

일부 주에서는 이에 편승해 에볼라 의심 환자들에 대한 ‘강제 격리’를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이다. 한 술 더 떠 공화당은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는 서아프리카에 대한 왕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방침은 ‘셀프 격리’다. 에볼라 퇴치에 나선 의료진의 구호활동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강제격리를 시킬 경우 구호활동이 크게 위축돼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워싱턴 정가는 현재 에볼라의 정치적 파급력에 온 관심이 쏠려 있다. “에볼라 사태는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장(場)이다. 에볼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보상 또는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에볼라 이슈는 정치와 맞물려 ‘안전과 인권의 대결’이라는 사뭇 비이성적인 대결구도로 흐르고 있다.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기에 다소 과도하더라도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구호활동을 벌인 의료진 등 선의의 활동가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에볼라가 중간선거에서 핫이슈로 부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가의 기본 의무가 주권과 영토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재정적자와 같은 장기적 이슈는 국민에게 당장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국민이 직접 몸으로 느끼고 직접 반응하는 민생이 최우선이라는 철칙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정치권에선 너도나도 ‘민생’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민생정책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최근 헌재의 총선 선거구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국회의원 간 밥그릇 싸움이 재연될까 우려된다. 우리나라에선 당장 눈앞에 큰 선거는 없다.

하지만 민심이 한번 출렁이면 에볼라가 미국 정가를 흔들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 민심이 어느 날 갑자기 성난 표정을 짓지 않도록 정치권은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

최익재 국제부문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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