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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작품 한번 찍어 볼까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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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사진에라도 붙잡아놓지 않으면 금세 잊혀진다. 소년중앙 학생사진기자들이 가을을 담으려 서울 북촌으로 출사 여행을 떠났다. 왼쪽부터 김민지·박상하·김진서 학생사진기자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하늘, 햇살을 머금은 붉은 단풍으로 장식된 길.

누구라도 카메라를 꺼내 이 장면을 두고두고 남기고 싶겠죠. 소년중앙 학생사진기자(이하 학생사진기자)들이 가을을 맞아 출사(出寫·사진사가 출장 가서 사진을 찍음)를 다녀왔습니다. 숲 속 도서관부터 대한민국 최초 공중목욕탕까지. 도심에서 즐기는 단풍놀이와 세기를 넘나드는 시간여행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김대원 인턴기자,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김민지(안산 경수중 2)·김진서(서울 삼각산초 5)·박상하(서울 가곡초 6) 학생사진기자

지난달 30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자기 얼굴만한 카메라를 든 학생들이 나타났다. 학생사진기자들이 출사를 나온 것이다. 출발지는 북촌문화센터. 장비를 점검하고 전시관에서 한옥의 구조에 대해 살펴본 뒤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의 코스는 세 가지다. 북촌문화센터~중앙고등학교 사이 계동길, 근대식 한옥을 구경할 수 있는 북촌로, 단풍이 한창인 삼청공원.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삭막한 도시에서 발견하기 힘든 멋진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1 계동 골목길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초의 목욕탕인 중앙탕. 다음달 16일에 문을 닫는다. 김민지 학생사진기자 2 지붕 위에 올려진 자전거가 인상적인 왕짱구식당의 외관. 김진서 학생사진기자

70·80년대를 걷다, 계동길

북촌문화센터에서 얻은 안내책자만 있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첫 번째 코스는 지도조차 필요 없다. 북촌문화센터를 나와 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이곳이 바로 계동길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에서 ‘북촌(北村)’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곳은 경복궁과 가까워 사대부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북촌의 초입인 계동길에는 상상 속 권문세가의 기와집이 보이지 않았다. 3층을 넘지 않는 근대식 상가만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개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60년대 후반 강남지역을 개발하면서 강북의 인구가 강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강북에 있던 학교들도 강남으로 이전했는데, 그 자리에 대형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북촌의 경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옥이 사라지고 근대식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곧게 뻗은 계동길만이 수백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옥이 사라진 계동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70·8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상점가의 낡아빠진 간판, 족히 30년은 되어 보이는 분식집은 부모님께 들은 옛날 식당의 모습 그대로다. 새로 생긴 가게조차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로 계동의 분위기를 전승한다. 흑백사진 전문 스튜디오인 물나무 사진관이 소중 사진기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계동길 중간에 위치한 물나무 사진관 앞에서 촬영에 열중하는 학생사진기자들. 왼쪽부터 김민지·박상하·김진서 학생사진기자

가게 안에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흑백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유명인사의 사진도 곳곳에 보였다. 학생사진기자들은 선반 위에 놓인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한 그들에게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장진영 기자가 라이트 박스(Light box) 위에 필름을 올려놓고 루페(Lupe, 확대경)로 화상을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옛날에는 사진을 인화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내가 찍은 이미지를 확인했어. 무턱대고 인화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사진관을 나와 20m쯤 걸으니 대한민국 최초의 목욕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1968년 문을 연 ‘중앙탕’이다. 1920년대 중반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영향으로 평양과 서울에 대중목욕탕이 생겼지만 당시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과 옷을 벗고 마주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산업화의 바람과 함께 위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1960년대 후반에야 목욕탕이 대중화됐다.

모두가 한참 동안 중앙탕을 바라보았다. 입구에 붙은 종이에는 “사정상 11월 16일까지만 운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몸을 담갔던 목욕탕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써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걸었다. 계동길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중앙고등학교 정문과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본에 ‘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겨울연가의 촬영지가 바로 중앙고다. 주변 상점에서 온통 배용준 관련 상품을 팔아 욘사마 거리로 불리며 외국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 10년이 지난 지금도 빛바랜 욘사마의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일본인 관광객을 만날 수 있었다.

3 옛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대문. 박상하 학생사진기자 4 북촌 4경. 막다른길 담장 위에서 바라본 한옥마을의 지붕. 박상하 학생사진기자 5 북촌에는 한옥 이외에도 여려 형태의 집들이 공존한다. 김민지 학생사진기자

북촌의 자랑, 한옥마을

민속촌에 가면 진짜 한옥을 볼 수 있지만 그곳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북촌의 한옥에는 사람이 산다. 살아 숨쉬는 한옥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고 입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을 올랐다. 잠시 후 다시 한 번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걷다보니 계동길에서 볼 수 없던 한옥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방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북촌로 12길 일대에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많다. 대개 유료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체험은 하지 않았지만 입장료가 따로 없는 매듭공방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공방을 나와 내리막을 내려가니 차도가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돈미약국 옆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 이곳은 북촌로 11길이다. 북촌에서 한옥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으로 북촌 8경 중 네 군데가 모여 있다. 물론 그만큼 관광객도 많아 촬영에 애를 먹었다.

무심코 걷다가 좋은 볼거리를 놓칠 뻔 했다. 북촌로 11길 일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북촌 4경이다. 길을 따라 걷다가 왼편에 슈퍼마켓이 나타나면 그 옆 도로를 확인해보자. ‘막다른길’이라고 써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차를 탔을 때 이야기다. 걸어 올라가면 건물이 길을 막고 있지만 왼편으로 좁게 골목이 나있다. 오른편에 한옥, 왼편에 담벼락이 세워진 좁은 길이다. 이곳에서 담벼락 너머를 내려다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기와지붕들이 눈에 들어온다.

박상하 학생사진기자

“우와, 진짜 예쁘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담벼락 너머를 찍기 어려워요.” 제일 어린 김진서 학생사진기자가 볼멘소리를 했다. 중학교 2학년인 김민지 학생사진기자는 담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편안하게 찍었다. 박상하 학생사진기자는 뒤로 물러 계단 위로 올라가 촬영하는 재치를 선보였다.

올라온 길을 다시 돌아가 슈퍼마켓 앞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첫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11자 모양으로 늘어선 한옥이 보였다. 북촌에서 한옥이 가장 잘 보전되어 있다는 북촌 5경, 가회동 골목길이다. 뒤를 돌면 빌딩이 보이는데 앞을 보면 모두 기와 지붕인 광경이 마치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정면에 보이는 광경이 북촌 6경, 뒤를 돌아봤을 때 광경이 북촌 5경이다.

계속해서 길을 오르자 전통적인 느낌의 한옥은 사라지고 ‘퓨전 한옥’이 나타났다. “이것도 기와집이에요?” 김민지 학생사진기자가 물었다. 붉은색 벽돌집에 기와지붕을 얹었기 때문이다. 사실 북촌의 한옥 대부분이 전통에서 벗어난 형태의 가옥구조를 지녔다. 일제강점기 도시화로 인한 서울의 인구집중 현상은 주택난을 가중시켰다. 결국 1930년대 실시된 주택 개발로 넓은 집터를 나눠 작고 밀집된 형태의 한옥을 여러 채 지었다. 도시로 몰리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한옥은 지붕이 낮아졌으며 마당은 줄어들고 방의 수가 늘었다. 유리·타일과 같은 근대식 건축 재료도 쓰였다. 주민의 필요에 따라 도시주택에 걸맞은 형태로 꾸준히 변화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건물이 바로 앞서 발견한 퓨전 한옥이다. “집은 한옥인데 문에는 도어락이 달려 있어요.” 박상하 학생사진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북촌에서의 촬영도 조용히 마무리됐다. 곳곳에 붙은 ‘쉿’이라는 문구의 현수막 때문에 말소리보다 셔터소리가 더 크게 들렸던 시간이었다. 촬영 중간 여행객들의 단체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삼청공원으로 향했다.

1 출사 미션인 ‘세 가지 맑은 것’ 중 걸으면서 낙엽이 바스러지는 맑은 소리를 표현했다. 김
민지 학생사진기자
2 유아 숲 체험장 내 사슴벌레 조형물. 김민지 학생사진기자

도심 속의 숲, 삼청공원  

출사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삼청공원(도시계획공원 제1호)이다. 일제강점기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 공원이다. 삼청(三淸)이란 산과 물에 인심까지 ‘세 가지가 맑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사진기자들에게 깜짝 미션이 주어졌다.

사진은 순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무심코 데크 아래를 쳐다봤는데 고개를 빼곰히 내민 고양이의 얼굴을 포착할 수 있었다. 박상하 학생사진기자

“삼청을 주제로 가을에 어울리는 세 가지 맑은 것을 표현하시오.”

미션을 받고 어리둥절해진 학생사진기자들은 일단 공원을 거닐며 가을을 만끽해 보기로 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따라가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집을 닮은 건물이 나왔다. 삼청 숲 속 도서관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주변 나무를 베지 않고 사이 공간에 지은 건물이다. 사진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카메라를 들고 쪼그려 앉거나 고개를 뒤로 빼며 분주히 도서관 전경을 담았다.

출사를 마치고 북촌문화센터에 모인 학생사진기자들. 왼쪽부터 김민지·김진서·박상하 학생사진기자

실내에선 은은한 커피 향이 풍겼다. 여느 도서관에는 음료 반입이 불가능하지만 이곳에선 음료를 판매한다. 북 카페와 도서관이 혼합된 모습이다. 벽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는 곳에는 일반 도서, 신발을 벗고 앉는 자리에는 어린이 도서가 있었다. 유리벽을 통해 공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서관 안에서 따뜻하게 즐기는 가을이다.

도서관을 나와 맞은편 유아 숲 체험장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세 가지 테마의 숲이 조성돼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동심의 숲에선 엄마와 함께 놀러 온 아이들이 그물에 매달려 놀고 있었다. 좀 더 들어가자 물의 숲이 나왔다. 산 중턱에 보를 쌓아 얕은 물이 흐르게 만든 이곳은 여름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노는 곳이다. 물이 맑아 가재와 민물새우도 산다는데, 유심히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박상하 학생사진기자는 가재 대신 물 위에 떠다니는 낙엽을 찍었다.

3 걸으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 공원 산책로. 김민지 학생사진기자
4 아늑한 분위기의 숲 속 도서관. 김민지 학생사진기자
5 유아 숲 체험장 뒷편에 위치한 물의 숲. 김진서 학생사진기자
6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오르는 내내 가을 숲을 만끽할 수 있다. 박상하 학생사진기자

물의 숲을 나와 오르막을 오르자 숲 속의 숲이 나왔다. 그곳에선 유치원 아이들의 낙엽 샤워가 한창이었다. 학생사진기자들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초상권 문제가 있으니 아이들의 얼굴을 찍지 말라는 관리인의 제지에 뒷모습 밖에 담을 수 없었다.

출사가 끝나갈 무렵, 아쉬운 마음에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마저 걸었다. 밤에 삼청공원을 걷는 연인은 결혼을 한다는 말이 납득될 정도로 길은 아름다웠다.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기 전, 뒤를 돌아보자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김민지 학생사진기자는 “학교니 학원이니 정신없이 살다가 조용한 곳에 와 사진을 찍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박상하 학생사진기자는 “주제를 고민하느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 아빠와 함께 와서 다시 한 번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원을 나섰다. 어느새 하늘은 붉은 단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넣었던 카메라를 도로 꺼내 찰칵, 하늘을 담으며 출사 여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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