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맞선본 여동생|김영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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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3번째 맞선을 보고 온 여동생의 표정은 꼭 벌레씹은 꼴이었다.
『왜, 또 별 볼일 없디?』
나도 똑같은 질문을 13번이나 하려니까 진력이 나서 건성으로 물어 보았더니 총알같이 내뱉는 말인즉, 『킹카(트럼프에서의 킹카드)는 다 어디로 가고 물카(별 볼일 없다는 뜻) 만 계속 나타난담』
뾰로통해진 그 애를 보면서 나는 그만 휙하고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도 맞선을 보고 와서 그날도 신통치 않다며 투덜거리던 것이 생각나서였다.
좀 세련되고 낫다 싶은 여자 애들은 남자가. 웬만해도 더 멋진 남자가 있을 것 같아 고른답시고 퇴짜를 놓다보니 세월은 가버리고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임자가 다 있더라는,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은 자기도 미대를 나왔으니 미적 감각도 남보다 있고, 세련됐다는 자부심을 가진 여자 축에 끼여 남자를 고르다 보니 폼 나는 남자는 눈 씻고 볼래도 없다는 투로 투덜거리던 것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러니 13번째까지 맞선을 봐도 눈에 꼭 드는 남자가 있을 턱이 있겠는가.
『도대체 어떤 남자여야 네 마음에 쏙 들겠니?』나는 답답해서 물어보았다.
『난 많이도 안 바란다구. 키는 내가 1백62㎝니까 나보다 10㎝정도는 커야되고 장남이나 외아들은 부담스러위서 실고 학벌·직장 번듯하고 생활하는데 돈걱정으로 찌들지 않고 무드 있게 살 수 있으면 되지 뭐.』
아이쿠, 대한민국 총각 중에 그런 사람 몇 명이나 있을까.
아이를 하나 낳을 때마다 5㎏씩 몸무게가 불어서 모두 10㎏이 늘어 앉아있는 샘플을 바로 제 코앞에 놓고도 무드를 찾으니….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기고만장해서 무드 운운했던가 싶은게 뭐라고 대꾸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도 초봉이 24만원정도이고 아무리 남자네 집이 윤택하다해도 5백만원 짜리 15평 아파트 전세를 얻어주는 집도 그리 흔치 앓은 건 둘째 치고라도 외모나 멀쑥해 갖고 처가 덕이나 보려고 흘끔거리는 남자나 안 만나면 천만다행인 줄 알아야 할텐데 말이다.
다만 결혼할 나이에 맞게 성숙된 인격을 갖고 처자식에 관한 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남자면 됐지 뭐 더 뾰죡한게 있을까.
나 역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뭘 좀 아는 것 같은데 내 동생 나이에 그 많고 깊은 것을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 울타리 밖의 세상 물정엔 눈도 안 돌리고 오로지 밝은 햇빛 속에서 더 깨끗하고 윤기 있는 해바라기 씨를 고르려는 천진한 어린애의 욕심만을 지닌 그 애를 철없다고 꾸짖어야할지, 살면서 알아가도록 내버려둬야 될지-. <서울 마포구 망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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