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우대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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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월부터 65세이상의 노인에게 발급된 경로우대증이 도처에서「경로」 아닌 「경원」 의 대상이 되고있다.
노인이 혼자 서있는 버스정류장에선 버스가 그냥 지나가 버리고 요금의 반액을 내는 목욕탕, 이발소등에서도 시비가 빈번하다. 노인들은 눈치가 보여 차라리 요금을 내고 떳떳한 대우를 받고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당국은 이런 부작용을 바로잡기위해 암행단속반을 편성, 노인을 푸대접하는 차량이나 업소는 적발되는대로 행정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수입이 줄어든다고 노인을 푸대접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딱한 일이나 바쁜 공무에 이런 일까지 단속해야하는 당국도 딱하기는 매한가지다.
정부-여당에 의해 경로우대증의 확대발급이 실시될때부터 이것이 노인문제해결의 본격적인 접근이 아니며 실행상의 부작용이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이점은 본란에서도 지적한 바있다. 다만 이것이 점차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잇따라 등장할 갖가지 노인복지대책의 선구적 조처가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제도의 성공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경로우대증을 사용하는 노인이나 이들을 수용하는 업소가 다같이 불편을 느끼고 불만스럽게 생각하는것이 현실이라면 이 제도의 시행을 재고해 봄직도 하다.
물론 당국은 암행단속같은 궁색한 방법을 써서라도 이 제도를 정착시키려하고 있으나 그러려면 우선 수용업소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같은 보완책이 강구되어야할 것이다. 경로우대증이 통용되는 국공립시설은 제외하고라도 시내버스, 시외버스, 목욕탕, 이발관, 극장등 민간의 사설업소에 대해선 일정비율의 손비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들 업소가 손해를 보더라도 교육이나 홍보를 .통해 계몽하면 경로우대증 푸대접이 사라질 것이라는 당국의 기대는 너무 안이하고 무리도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정부가 노인문제를 다룸에있어 경로우대증의 지급같은 지엽적인 대응책에서 탈피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선 노인을 무위하게 쉬게 하지말고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일에서 비롯될 것이다.
취업기회의 확대, 정년의 연장등은 노인들의 원숙한 경험을 활용할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사정은 어떤가. 노인에게 맡겨도 충분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시켜 직업에 대한 불만만 쌓이게 만든다거나 55세만 되어도 「늙은이」로 취급돼 직장에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65세이상의 노령인구는 전인구의 4%인 1백50만명에 이르고 있으나 의학의 발달과 영양상태의 호전으로 심신이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한 노인아닌 노인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이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내는 현재의 「사회적 관행」이 계속된다면 정부가 보호해야할 일자리없는 노인은 더욱 늘어나고 노인북지대책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아울러 노인문제해결엔 가정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싶다. 급격한 핵가족화로 노인들이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추세이나 가정에서의 노인의 역할과 전통적인 우리의 미덕을 상기하면 이추세를 둔화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일찌기 대가족제도가 붕괴된 구미사회에서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과 이로인한 인간적갈등이 얼마나 사회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는 구태여 지적하고 싶지않다.
경로우대증의 푸대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뿐, 잠재적인 노인문제의 폭발적 위험성에 정부나 국민 모두가 슬기롭게 대처할 태세를 갖춰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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