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38. 도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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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열차에서의 도둑질 경험 이후 나는 남의 것이 아닌 "나만의 코미디"를 추구해왔다. TV에서 한창 인기를 누릴 때의 필자.

남의 돈을 훔친 적이 있다. 내 생애 딱 한 번의 도둑질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염낭을 훔친 걸 뺀다면 말이다. 한국전쟁 직후였다. 나는 연구생 한 명과 함께 충북 옥천에서 대구까지 표 없이 기차를 탔다. 그때는 무임승차가 흔했다. 물론 걸리면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옥천에서 공연이 무산되는 바람에 우리는 이틀이나 굶은 처지였다.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수시로 났다.

열차 좌석은 마주보게 돼 있었다. 예전의 비둘기호처럼 말이다. 우리 앞에 육군 헌병 중사가 와서 앉았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술 한 잔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이라며 들고 있던 조그만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50개쯤 되는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돈이 들어있었다. 동료들에게서 받은 전출 위로금인 것 같았다. 그는 일일이 돈을 센 뒤 다시 보따리에 넣었다. 그리고 발 밑에 보따리를 놓고 곯아 떨어졌다.

나는 연구생을 쳐다봤다. 눈이 딱 마주쳤다. 우리는 이틀이나 굶은 터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눈으로 얘기했다. '훔치자'. 그때 이미 연구생의 손이 보따리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봉투를 한 움큼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가슴이 쿵쾅쿵쾅 고동치기 시작했다. 헌병 중사가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우리는 불안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끼이이익!" 그때 조그만 간이역에 열차가 섰다. 우리는 허둥지둥 짐을 들고 내렸다. '헌병이 따라 내리진 않을까'. 내내 가슴이 떨렸다. 아무 일 없이 기차가 떠났다.

우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식당부터 갔다. 그리고 음식을 잔뜩 시켰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그리고 다음 열차표를 사서 기차를 탔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임승차할 때보다 마음은 더 불편했다. 열차 안에는 군인들이 왔다갔다 했다. 우리는 푸른 군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구역이 가까워졌다. 정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헌병 중사가 대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하지'. 연구생도 나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열차가 섰다. 대구역에 내렸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모두 헌병 중사로 보였다. 우리는 후다닥 뛰어서 역을 벗어났다. 그리고 허둥지둥 극장으로 갔다.

그리고 훔친 돈으로 인심을 썼다. 단원들에게 밥도 사주고, 담배도 사줬다. 물론 단원들은 몰랐다. 우리가 도둑질로 생색을 내고 있는 줄 말이다.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동안에도 내내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헌병 중사가 극장에 찾아오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땀 흘리지 않은 열매는 내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도둑질을 않겠다'. 돈 뿐만이 아니었다.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땀으로 일구는 나만의 코미디를 해야 한다.' 도둑질로 인해 얻은 큰 교훈이었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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