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분노는 안개처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숨진 8명의 장병을 생각하면 가슴이 불에 덴 듯 아프다. 그 부모들의 마음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적탄에 숨졌다 해도 원통할 텐데 동료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재발방지책이 무성하게 나온다. 병영 환경을 개선하고, 구타를 없애고, 교육을 시키고…. 그럴듯하다. 그러면 앞으로 이런 사고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정책의 합리성에만 길들여져 왔다. 사회적.국가적 문제가 대두됐을 때 우리는 과학을 하듯 사회현상을 이성적 연구를 통해 해답을 얻어내려 한다. 과거의 경험, 여론 조사, 사회심리학, 모의실험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정책의 과학화, 사회과학의 과학화와 무관치 않다. 물론 그것도 사회문제를 푸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런 합리와 과학적 접근이 도움은 주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건의 완벽한 재발 방지책이 되리라 장담하지 못한다. 그 사건이 난 뒤 한 어머니가 아들을 병영으로 들여보내면서 한 말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참고 또 참아라." 아들의 손을 꼭 잡고 한 어머니의 이 말보다 더 위대한 대책이 있을까. 현장검증 때 사고병은 "모두 다 미워서 죽이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미움이었다. 분노였다. 미움과 분노가 이런 엄청난 일을 만든 것이다. 결국 재발방지책은 우리 장병들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환경을 개선하고 대책을 수립한다 해도 미움과 분노가 일어나면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움이니 분노니 하는 말이 나오면 우리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런 감정적 문제에 무슨 이성적 해결책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개인의 영역 안에 묶어 두려 한다. 공공의 영역으로 범위가 확대되면 이런 말들은 공허한 말로 치부한다. 그런 문제는 사회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공영역에서 도덕심.양심 등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직접 원인은 미움이고 분노다. 이를 해결해야만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분노가 덜 일어나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다. 분노란 객관적 여건 때문에도 일어나지만 이번 경우와 같이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그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러나 인간관계라는 분야로 들어가게 되면 이성의 영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 사이의 감정, 느낌, 본능, 살아온 배경 등 이성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나의 교만, 욕심, 또는 무례함이 상대방에게 미움과 분노를 일으킨다면 내가 그것을 절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공의 정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분노가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그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청와대의 한 모임에서 자신이 "분노 때문에 정치를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부산의 한 신부에게 자신이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을 예로 들며 "이런 사람이 대학을 못 나왔다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분노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분노의 생산적 이용이라 할까. 이번 사건도 그 병사가 분노를 자기파괴적이 아니라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는 길은 없었을까. 그러나 분노를 아무리 생산적으로 만든다 해도 분노의 열매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것도 대통령 개인의 분노 때문은 아닌가.

무엇보다 그 사병이 분노의 마음을 풀 곳이 있었다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미움을 풀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나의 억울함을 털어놓을 곳이 있고 궁극적으로 해결을 받는다는 희망이 있다면 미움은 나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분노의 힘으로 큰일을 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희망 속에서 분노를 풀고 미래로 나아가는 사람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을 정책이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은 군만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분노가 포도처럼'매달리도록 할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피어났다가도 금방 사라져 버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