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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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게는 제 몸 크기대로 굴을 판다』는 말이 있다. 자기그릇이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오랫동안 경제문제를 다루다보니 모든 것을 경제의 척도에서 재려는 습관이 붙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건 일단 경제적 측면에서 가늠하고 괜한 걱정도 한다.
고차적·대국적으로 생각 못하고 좁은 시야에서만 본다고 야단도 많이 맞았다.
올림픽유치소식을 들었을 때도 한편으론 대단한 영광이라고 기뻐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돈이 참 많이 들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은 돈이 많이 드는 잔치다. 앞으로 시일이 좀 남아있다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번엔 중앙청을 비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을 보면서 느낀 감동과 아쉬움을 생각하면 정말 희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시 경제의 척도에서 보면 걱정이 앞선다. 박물관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약 5백억원 쯤 된다고 한다. 어찌 그 뿐이랴. 중앙청에 있던 외무부 등이 기획원청사로 들어가고 기획원이 종합청사로 가고 종합청사에 있던 건설부 등이 과천 제2종사로 가고….말이 쉬워서 그렇지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인가.
개인집을 한번 이사해도 많은 돈이 드는데 이런 대규모 회사이동은 더할 것이다.
간판하나 갈아 달고 캐비닛하나 옮기는 것이 모두 돈이다.
또 과천 제2청사가 완공돼도 지금 세들어 있는 정부부처들은 그대로 남아야한다.
경제사정이 좋을 땐 그만한 돈이야 별대수로운 게 아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마이너스 성장의 충격을 겨우 벗어났다 하나 아직도 경제는 무척 어렵다.
그래서 정부나, 기업이나, 근로자나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한자리숫자의 물가안정과 외상삭감을 위하여 금년엔 자금도 적게 올리고 하고 싶은 것들도 참고 있다.
정말 박물관다운 박물관이 하나 생기는데 안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짜가 아니다. 돈을 들여야 하고 그 돈은 바로 세금이다.
박물관을 갖게 됐다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그 때문에 세금을 좀 내주어야겠다고 하면 얼굴표정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돈 쓸데는 한두 군대가 아니다.
금년은 아마도 정부에 들어오는 돈보다 나갈 것이 많을 것이다. 경기가 안 좋고 물가가 안정될 땐 세금이 잘 안들어오는 법이다. 한푼이라도 아끼고 쪼개 써야 할 판이다.
물론 아무리 나라살림이 빠듯하다 해도 쓸 돈은 써야 한다.
그래서 어디부터 쓸 것인지 차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까진 경제 건설이 급해 문화적인 일들이 많이 뒤로 미뤄졌다.
그래서 모처럼 문화적인 큰일을 한번 해보자고 생각한 것 같다. 새로운 발상이고 관심전환이다.
이런 고차원적 규성울 경제라는 속된 척도로 재는 것이 비문화적일지 모른다.
역사적 큰일을 하는데 그까짓 돈이 문제냐 하는 꾸지람도 있을 것이다.
게는 역시 펄밖에 안보이는지 『그래도 돈이 많이 들텐데…』하는 걱정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최우석 <부국장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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