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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 이번 주말부터 확대] 주5일 근무 '3무(無)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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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여의도 D증권사에 다니는 임모(40) 부장은 요즘 토요일에도 출근했던 '옛 시절'이 은근히 그립다. 1998년 말 증시의 토요 휴장이 시작된 뒤 토요일에 나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재작년 다른 회사들에 앞서 토요 휴무가 시행되자 마음껏 놀러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주말에 몇 번 교외로 나들이를 하니까 더 갈 데가 없더라고요. 길은 막히고, 몸은 피곤하고, 돈도 많이 들고…. 그렇다고 집에서 낮잠을 자자니 아내와 아이들 눈치 보이고…. 어떨 땐 꼬박꼬박 돌아오는 주말 이틀이 난감할 때도 있어요."

지난해 7월 공기업, 금융.보험사, 종업원 수 10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작된 주5일 근무제가 실시 1년을 맞았다. 이번 주말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무원(교육공무원 제외) 등으로 확대된다. 전체 정규직 근로자의 40%에 달하는 300만 명의 직장인이 주2일 휴무제를 즐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인다'는 도입 취지와 달리 막상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부담스러워 하는 국민도 의외로 많다. 쉬거나 노는 방법을 잘 몰라서, 비용 때문에, 노는 인프라가 미비해 즐거워야 할 연휴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화관광부가 주40시간 근무제 도입 1주년을 맞아 최근 수도권 직장인 8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현재 여가생활에 '불만족'하거나 '매우 불만족'하다는 응답이 57%에 달했다. '매우 만족'이라는 응답은 5%에 불과했다.

문화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여행.생활스포츠 등 동적인 여가활동을 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영화 관람.TV 시청.독서.음주.잠자기 등 주로 수동적인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 이 같은 괴리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시설.교통 등 각종 인프라 부족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정보 부족도 원인이 되고 있다고 답했다.

주5일제는 주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맞벌이를 하는 은행원 김지순(31) 대리는 "과거엔 근무 핑계로 가지 않았던 시댁 행사에 이제는 빠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가사도 처음엔 남편이 좀 도와 주는 듯하더니 '냉장고 청소를 왜 안 하느냐' '아이 성적이 이게 뭐냐'며 시시콜콜 간섭하는 바람에 오히려 부부싸움이 잦아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잘 놀고 잘 쉬는' 주말을 위해선 무엇보다 '가정 중심'사고가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는 "큰 돈 들이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나 노하우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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