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국회도 신세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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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대 「사이또」총독(∼27년)으로부터 비롯해 4대 「야마나시」(산리반조·27∼29년), 다시 5대「사이또」(29∼31년), 「우까끼」(자원일성·31∼36년), 7대「미나미」(남차낭 36∼42년), 8대 「고이소」(소기국소·42∼44년), 9대「아베」(아부신행·44∼45년) 총독이 이곳에서 한국의 민족혼을 말살하는 식민통치를 했다.
해방후 미군정기간 동안 이 건물의 주인은 남한주둔군사령관으로 미군정의 총책임자인 「하지」중장이었다. 군정하의 과도 입법의원도 이곳 중앙홀을 사용했다.
1948년 한국정부수립을 위해 실시된 5·10총선거에 의해 구성된 제헌국회는 5월30일 당시 군정청이었던 이건물 중앙홀에서 개원했다. 그때까지는 미군정하였기 때문에「하지」사령관이 국회의장앞으로 서한을 보내왔다. 그 서한에는 국회운영에 대한 「하지」사령관의 소신이 장황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자 평소 「하지」장군과 사이가 나빴던 이승만국회의장이 대노했다.
이박사는 6월1일 2차 본회의 벽E에 「하지」장군의 편지를 읽어보니 그것은 단순한 격려나 치하편지가 아니라 국회를 어떻게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공산당들은 미국이 제국주의요, 우리는 그 식민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지」장군이 이런 편지를 보냈으니 방해자들은 「하지」가 만든 국회는 「하지」가 하라는대로 하는구나 하고 욕을 할것이 아닙니까』고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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