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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개인정보·안전 … 생활 개헌도 얘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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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개헌론’ 보다 더 중요한 건 ‘개헌 프로세스’.

 역대 정부의 개헌 논의 실패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현행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할거냐 말거냐, 분권형 이원집정제로 할거냐 말거냐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개헌이 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국회의원 3분의 2의 표를 모으고, 어떻게 국민투표를 통과할 것인지에 대한 중지를 모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헌법을 구성하는 요소 중 권력구조 문제 외에 국민 기본권이나 중앙과 지방의 역할 분산 문제 등에 대해선 취급을 소홀히 했다. 한마디로 ‘생활 개헌’이라기보다 ‘권력’에만 초점을 맞춘 개헌 논의였다.

 이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권력구조를 어떻게 하느냐보다 개헌이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야 한다”며 “그 다음 개헌의 범위, 적용 시점, 국민투표 시점을 논의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먼저 확인한 뒤 권력구조만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할 건지 기본권까지 확대할 건지, 개헌 추진을 2016년 총선 시점에 맞출 건지 2017년 대선 시점에 맞출 건지, 차기 대선주자들에게 해당하게 할 건지 차차기에 적용하게 할 건지 등을 정하라는 뜻이다.

  이욱한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대선 룰을 정해주는 것”이라며 “이해당사자들이 그 룰을 직접 정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치인들은 뒤로 빠진 채 전문가들이 시간을 갖고 틀을 짠 다음 구체적인 기간을 정한 계획에 대해 합의한 뒤 움직여야 정략적 수단으로 개헌이 이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구조 외에 경제·사회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한 이슈도 논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제 도입(1994년) 이전인 87년에 제정된 것이라 오히려 지방분권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안희정 충남지사 등은 그래서 개헌론의 무게를 중앙·지방 분권에 두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권 규정이야말로 87년 이후 지식정보화 사회로 급진전한 한국 사회의 권한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알 권리, 개인정보와 관련한 관리권이나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볼 수 있는 ‘안전하게 살 권리’ 등을 기본권 규정에 포함하는 개정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개헌인데 현재 이런 논의는 쏙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87년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 지방자치 규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간단하게 적혀 있다 보니 지방자치의 근간이 되는 내용들이 중앙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법률로 정해지고 지방자치의 근본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을 한 부분만 하든 여러 부분을 하든 비용은 다르지 않다”며 “검찰의 기소독점 문제, 배심제처럼 우리 현행 헌법에 없는 부분도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통일 한국을 대비해 통일 이후를 고려한 형태의 개헌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다원화된 측면도 반영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개헌 논의에 앞서 입법부와 정당이 먼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자칫 잘못하면 마치 현실 정치의 실패가 헌법 개정을 안 했기 때문이라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줄 수 있다”며 “개헌 논의를 하기 전에 여야가 어마어마한 수준의 혁신 경쟁을 하겠다고 합의하고 실천해 그 신뢰를 바탕으로 개헌 방식과 어젠다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황 교수는 “개헌 논의는 ‘타협의 정치’가 알파이자 오메가인데 현재 여야의 정치행태론 어떤 제도가 들어오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며 “의원내각제는 물론이고 대통령제를 중임제로 유지한다 해도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힘을 낼 수 없는 구조임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상·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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