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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냉난방 기숙사 vs 50년 된 수용소 … 감방살이 '복불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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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기도 안양교도소에서 사기죄로 복역 중인 A씨는 10평 남짓한 방에서 다른 죄수 11명과 공동생활을 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에 기상하면서 시작된다. 화장실이 한 개뿐이어서 아침마다 선점을 위한 ‘전쟁’이 치러진다. 오전 노역을 마치고 감방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다. 외벽에 난 가로, 세로 각각 한 뼘 크기의 구멍으로 밥을 받아 먹는다. 얼핏 보면 ‘배수구’처럼 생겼지만 ‘배식구’다. 오후엔 직업 훈련을 하지만 오후 9시 취침 시간까지 12명이 부대끼다 보면 종종 싸움도 일어난다. 난방시설이 부실해 겨울엔 따뜻한 ‘아랫목’과 ‘윗목’ 쟁탈전이 벌어진다.

 서울 천왕동 남부교도소에서 사기죄로 복역하는 B씨의 ‘삶의 질’은 A씨와는 크게 다르다. 아침엔 같은 방 동료 4명이 기상하는 순서대로 화장실을 이용한다. 다른 방도 수감자는 4~5명이다. 오전 8시부터 한식 조리실로 가서 조리기능사 자격증 과정을 배운다. 이 외에도 건축도장·컴퓨터응용선반·광고디자인·플라스틱창호설치 등 7가지를 배울 수 있다. 점심 메뉴는 외부 교수진으로 구성된 급식위원회가 정한다. 오후엔 수감자들이 전문 상담사에게 심리치료를 받는다. 일과가 끝나면 동료 수감자들과 TV를 보거나 남성용 패션잡지 등을 돌려본다.

 전국 교정시설의 격차가 커 수감 생활 수준의 편차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4일 기자가 방문한 안양교도소에서는 1700여 명의 수감자가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1963년 준공된 안양교도소는 시설 안전점검 결과 재건축이 시급한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천장에는 배관과 전깃줄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반면 1100명이 생활하는 서울 남부교도소는 감방에 붙은 ‘수감 생활 안내’ 등의 종이만 없으면 대학 기숙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2011년 완공돼 방마다 최신 TV가 붙어 있었고 화장실에 딸린 양변기와 수도시설도 깔끔했다. 이중 창문엔 최신 감응장비가 있어 도주·자살 방지도 하고 있었다. 태양광과 지열 냉난방 설비를 갖춰 실내에서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다.

 법무부는 수감자들의 경우 ‘수형자 분류심사’를 거쳐 경비 등급별로 S1등급(개방시설)부터 S4등급(중경비시설)에 배치한다. 이때 사기·강도 등 죄명은 상관하지 않는다. 감옥 선택권이 없는 수감자로선 같은 죄를 저질러도 어느 시설에 갈지 알 수 없다. 교도소 배치는 ‘로또 뽑기’에 가깝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흉악범보다 열악한 시설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S3등급(일반경비시설)인 안양교도소는 여중생 성폭행 살인범 김길태 등이 수감된 S4등급 청송교도소보다 생활 환경이 나쁘다. 시설이 좋은 남부교도소, 강원 영월교도소 등으로 가기 위해 청탁을 시도하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다.

 환경의 차이는 교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수감자 간 폭력 등으로 인한 교도소 내 징벌 건수는 낙후된 안양교도소가 남부교도소보다 6배 많았다. 박준휘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외국의 경우 ‘셉테드(CPTED·범죄 예방 환경 설계)’ 설계로 교도소 내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환경을 개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비슷한 수감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가 시설이 낙후된 안양·창원 교도소, 거창·부산구치소 등의 신축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다. 하지만 혐오 시설이란 이유로 주민 반발이 심하다. 안양교도소는 17년째 재건축을 못 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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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교도소의 독방은 ‘기숙사형’이다. 책상과 TV·선풍기가 있고 화장실에 이중창 시설도 돼 있다. 태양열·지열로 개별 냉난방을 한다. 안양교도소의 감방은 12~13명이 공동 생활을 한다. 화장실이 한 개뿐으로 아침마다 줄을 서야 한다. 복도 라디에이터로 간접 난방을 하며 온수 공급도 안 된다. [사진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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